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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0일 토요일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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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134번 거룩하다 부활이여 영성체 성가 168번 오묘하온 성체
예물준비 성가 219번 주여 몸과 맘 다 바치오니 155번 우리 주 예수
332번 봉헌 179번 주의 사랑 전하리
파견 성가 250번 굽어보소서 성모여

입당송

콜로 2,12 참조
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네. 알렐루야.

본기도

하느님, 믿는 이들을 세례의 물로 새로 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저희를 지켜 주시어, 저희가 온갖 오류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충실히 간직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베드로는 중풍에 걸려 팔 년 동안 누워 지내던 애네아스를 치유해 주고, 선행과 자선을 많이 베풀고 죽은 여제자 타비타도 살린다. 이러한 일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된다(제1독서).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군중은 물론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거부감을 드러내며 떠나는 자들이 많았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도 떠나고 싶은지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대표하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 주님을 떠날 수 없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6(115),12-13.14-15.16-17(◎ 12)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또는 ◎ 알렐루야.)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 아, 주님 저는 당신의 종.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

복음 환호송

요한 6,63.6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저희가 받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7,20-2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위하여 비오니, 이들이 우리 안에 하나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

오늘의 묵상

'영원한 생명의 말씀'에 관한 오늘의 복음으로 요한 복음 6장의 묵상을 마치며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거듭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은,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의 기대와 고정 관념을 훨씬 뛰어넘는 표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철저히 인간적 욕망과 기대 안에서 빵의 표징을 이해하였고, 그러한 관점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바람을 단절시키시려는 예수님의 뜻을 감지할 때마다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이제 그들이 바라는 표징과 예수님의 표징이 더 이상 양립할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군중은 계시 앞에 선 것이고, 계시는 각자의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육적 관점이 영적인 차원으로 옮겨 가는 것은 계시를 온전히 자신의 고유한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복음은 암시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해 줍니다.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에 우리 역시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 속에 그저 익명으로 자리한다면, 그 안에서 아무런 성찰도 없이 피상적으로 계시 말씀을 대한다면 결코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런 표징을 보지 못한 셈입니다.
20세기의 유명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이라는 익명의 피상성에 머무는 대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찾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는 '양심의 부름'에 대한 결단성 있는 따름과 진정한 선택에서만 삶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예수님의 계시가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는 결단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응답을 그 누구도 우리 자신을 위하여 대신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