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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구원의 샘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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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46번 사랑의 송가 영성체 성가 154번 주여 어서 오소서
예물준비 성가 212번 너그러이 받으소서 163번 생명의 성체여
210번 나의 생명 드리니 174번 사랑의 신비
파견 성가 4번 찬양하라

입당송

시편 17(16),15 참조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

본기도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요나서는 유배에서 돌아온 뒤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을 찾는 데에 매몰되어 다른 민족들을 배척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요나는 다른 민족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려는 하느님의 도구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지만, 하느님께서 그 길을 막으신다(제1독서). 율법 교사도 사랑의 범위를 제한하려 한다. 그는 그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예수님께 묻지만, 이웃의 범위는 처음부터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이웃이 된다(복음).

제1독서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달아나려고 길을 나섰다.>
▥ 요나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ㅡ2,1.11
1 주님의 말씀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그 성읍을 거슬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나에게까지 치솟아 올랐다.”
3 그러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 마침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뱃삯을 치르고 배에 올랐다. 주님을 피하여 사람들과 함께 타르시스로 갈 셈이었다.
4 그러나 주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 5 그러자 뱃사람들이 겁에 질려 저마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안에 있는 짐들을 바다로 내던졌다. 그런데 배 밑창으로 내려간 요나는 드러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6 선장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이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소? 일어나서 당신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나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주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
7 뱃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자,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닥쳤는지 알아봅시다.” 그래서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혔다.
8 그러자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말해 보시오.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이고 어디서 오는 길이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느 민족이오?”
9 요나는 그들에게,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나는 바다와 뭍을 만드신 주 하늘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 사람들은 더욱더 두려워하며, “당신은 어째서 이런 일을 하였소?” 하고 말하였다. 요나가 그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아, 그가 주님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11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지자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12 요나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당신들에게 들이닥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13 사람들은 뭍으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으나,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져 어쩔 수가 없었다.
14 그러자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아, 주님! 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부디 저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 주님, 당신께서는 뜻하신 대로 이 일을 하셨으니, 저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15 그러고 나서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 16 사람들은 주님을 더욱더 두려워하며 주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서원을 하였다.
2,1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다. 11 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분부하시어 요나를 육지에 뱉어 내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요나 2,3.4.5.8(◎ 7ㄹ 참조)
◎ 주님, 당신은 구렁에서 제 생명을 건지셨나이다.
○ 곤경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 당신은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저승의 배 속에서 부르짖었더니, 당신은 제 소리를 들어 주셨나이다. ◎
○ 당신이 저를 바다 속 깊은 곳에 던지시니, 큰물이 저를 에워싸고, 그 모든 파도와 물결이 제 위로 덮쳤나이다. ◎
○ 제가 아뢰었나이다. “당신 눈앞에서 쫓겨난 이 몸, 어찌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다시 바라볼 수 있으리이까?” ◎
○ 저의 넋이 아득해질 때, 저는 주님을 기억하였나이다. 저의 기도 당신께,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다다랐나이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3,3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예물을 굽어보시고 받아들이시어,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성덕을 더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84(83),4-5 참조
주님,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선물을 받고 비오니, 저희가 성체를 자주 모시어 나날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요나와 율법 교사의 모습이 똑같아 보입니다. 율법 교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려고 지켜야 할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율법 교사였습니다. 분명 그가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먼저 ‘이웃’의 범위를 제한하려고 합니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본디 레위 19,18에서 ‘이웃’은 이스라엘 동족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요나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피하여 도망치는 이유가 나오지 않지만, 모레 독서에서 밝혀집니다. 요나는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용서하실 줄을 알았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시리아의 니네베 사람들에게 그 용서가 주어지는 것이 싫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지 않고 멀리 도망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의 이웃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힘닿는 데까지 무조건 이웃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시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마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추상적이거나 아주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 안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해나 달이나 별을 따다 주어도 자기가 베푼 것은 아주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과묵하고 고독한 사람으로 소개되는 반면, 선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요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잡신을 믿는 다른 사람들은 배 위에서 폭풍과 힘겹게 싸우면서 자기 신의 뜻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지만, 정통 신앙인 요나는 하느님의 뜻에 여전히 반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