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날 오늘 다음날

신심 - 구원의 샘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2015년 10월 29일 목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TV매일미사 업로드 준비중 입니다.

입당송

시편 25(24),16.18 참조
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이 세상 환난 속에서도 우리의 희망이 온전히 실현될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시니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고 격려한다. 아무것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제1독서). 공생활 끝 무렵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신다. 그러나 예언자가 죽음을 피할 수는 없기에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계속 가신다(복음).

제1독서

<어떠한 피조물도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9(108),21-22.26-27.30-31(◎ 26ㄴ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로 저를 구원하소서.
○ 하느님, 당신은 저의 주님. 당신 이름 생각하시어 저를 돌보소서. 당신의 좋으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저는 가련하고 불쌍한 몸, 마음속에는 구멍이 뚫렸나이다. ◎
○ 주 하느님, 저를 도우소서. 당신 자애로 저를 구원하소서. 당신 손길을 그들이 깨닫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이루셨나이다. ◎
○ 나는 입을 열어 주님을 한껏 찬송하고, 많은 이들 가운데서 그분을 찬양하리라. 그분은 불쌍한 이의 오른쪽에 서시어, 심판자들에게서 그를 구원하시네. ◎

복음 환호송

루카 19,38; 2,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 알렐루야.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대에 제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7(16),6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 이 말마디의 의미가 이중적인 것 같습니다.
전체 문맥 안에서 이 문장을 살펴보면, 이 구절은 환난과 박해와 순교를 이겨 내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 가운데 한 부분이고, 또 이 말씀이 순교자 축일에 자주 인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어떤 위험을 겪더라도 우리를 이토록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배반하여 도망갈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보다 앞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나 충실함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친아드님을 내어 주신 사랑, 그 아드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당신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면, 그 무엇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항구하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혹시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교까지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열렬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강해서 우리가 그 사랑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고 동시에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최선이 접목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는 주님과 함께 오늘도 힘차게 나의 길을 달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