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견진성사] 견진성사와 그 상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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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 작성일2009-07-02 | |||
[전례와 상징] 견진성사와 그 상징
견진성사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안수와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써 성신 강림날에 받은 성령의 은사를 온 교회와 신자들에게 전해주는 성사이다. 견진은 온 세상에 미치고 교회 안에서 영구히 재현되는 성령의 오심이기 때문에 ‘세례의 성신강림적 완성’이라고 표현한다. 원래 견진은 세례 직후에 주었다. 지금도 동방교회는 그렇게 하고 있다. 견진성사는 사도시대부터 늘 실천되어 왔고 세례와 성체성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에 입문(入門)의 성사라고 한다.
본래 물로 씻는 세례식과 영성체 전에 거행되던 견진 예식은 기름 바름, 안수, 그리고 표식을 하는 행위 등으로 거행되어 왔으므로 역사적으로 어떤 것이 견진의 본질적 요소인지 의심될 때도 있었고 학자들간에 이견도 분분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견진성사 예식서를 공포하면서 교황 바오로 6세는 라틴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견진성사의 본질과 그 행위를 교황 헌장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견진 성사는 한 손의 안수로 이마에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써 수여하며 ‘성신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라는 말마디를 왼다”(견진성사 예식서 교황헌장 참조).
도유(塗油) 전에 선발된 신자들 위에 두 손으로 안수하는 예식은 성사적 예식의 본질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식의 보완과 성사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임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도유 전에 이루어지는 두 손의 안수와 이마에 도유하면서 한 손을 머리 위에 얹는 안수는 명백히 구별된다.
이제 견진성사 예식 순서에 따라 안수, 크리스마 성유 바름, 성신 특은의 날인에 관하여 그 상징성을 알아본다.
안수
주교는 견진자들 위에 손을 펴들고 성신 칠은(聖神七恩)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안수한다. 이 안수는 무엇을 뜻하는가? 안수는 우선 소유의 표시다. 손 안에 움켜쥐는 것이다. 주인은 성령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손, 하느님의 손가락이다.
구약성서에 보면 하느님의 얼이 사람을 차지하도록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였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였고(창세 48,14 이하),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손을 얹어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민수 27,18이하). 신약성서에도 예수님이 어린이를 축복하고(마태 19,13 이하), 병자를 고쳐주시거나(마르 5,23), 제자들에게(루가 24,50)도 손을 들어 축복하셨다. 이러한 관습이 사도들에게도 전승되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성령의 세례를 베풀었다(사도 8,17 참조).
견진성사에서 안수는 견진자를 하느님 나라로 데려가는 작용을 한다. 하느님이 손으로 사람을 붙잡아 인도한다. 따라서 견진자는 하느님의 소유요 도구이며 하느님의 보호 안에 들어간다. 하느님의 소유가 된 견진자는 제단에 나아가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신 예수님을 사제와 더불어 아버지께 봉헌한다. 견진자는 하느님의 도구로서 세상을 쇄신하고자 노력한다.
기름(聖油)
기름은 밀과 포도주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배부르게 하신 중요한 음식의 하나이다. 하느님은 “올리브 나무 기름과 꿀이 나는 땅”(신명 8,8)에 이스라엘 백성을 정착시켰던 것이다.
‘올리브 나무 기름’은 바로 올리브 동산을 연상케 한다. 예수께서 수난 전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신 사실(마르 14,32-42 참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게쎄마니는 성전 맞은 편에 있는 올리브 산 기슭이며 ‘기름틀’을 뜻하는 명사인데 거기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아서 누군가 기름집을 차렸던 것 같다고 한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소서”(마태 26,39). 죽음의 경지, 수난을 앞둔 고뇌가 밤을 흔들고 신음을 한다. 피땀이 방울져 땅을 적시고 올리브 나무에는 새로이 햇순이 돋는다. 주님의 이마에서 흐르는 죽음의 땀과 핏방울이 견진자의 이마에 바르는 기름 방울의 유래다. 견진은 확실히 그리스도인의 성령 강림이다. 그것은 동시에 올리브 동산 고난의 핏방울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계속적인 성 목요일 밤이다. 주님의 수난에서 견진이 유래하고 미사의 수난 기념 중에 우리에게 기름 바르며 수난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도록 힘을 준다. 올리브 산 수풀은 오늘도 예수 승천을 기억하고 있다. 수난이 시작된 곳에서 승천 또한 이루어졌다. 기름 바르는 견진 예식은 단지 성령 강림이나 최후 만찬(성 목요일)만이 아니라 승천을 뜻한다.
기름은 흉년이 들었을 때도 일용식품일 뿐 아니라, 향유로써 몸을 향기롭게 하고, 사지를 튼튼히 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반면 견진자는 성찬 음식으로 보양되며, 그리스도의 향기(2고린 2,15)를 풍기고, 영신의 목표를 향하여 선수처럼 세속과 싸우며 악에 물든 상처나 죄의 유혹을 물리치게 된다. 이렇게 견진의 기름은 약동과 힘을 주어 끝까지 승리를 보증한다.
크리스마 성유
주교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성유를 찍어 견진자 이마에 십자형으로 바르며 “성신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고 한다. 이 성유는 견진자들이 예언자요, 사제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계승하는데 필요한 힘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란 그리스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크리스마’와 같은 어원이다. 크리스마 기름을 바름은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표시다. 그래서 주교는 견진성사 받은 사람이 신도로서 왕직, 사제직, 예언직을 수행할 힘을 받도록 기도한다.
성 목요일 성유를 축성할 때 올리브 기름에 발삼(Balsam) 향료를 섞는다. 발삼은 여러 가지 식물의 향기로운 진에서 채취하며 고상한 향내가 난다. 그래서 옛날엔 화장품의 원료였다. 이 발삼을 혼합하여 축성한 크리스마 성유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귀함을 표시한다. 따라서 견진자에게 이 기름을 발라 왕다운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품위와 존경심을 드러낸다.
그러면 왜 크리스마 성유를 십자형으로 바르는가? 기름이 올리브산 고난을 연상시키듯 십자가도 골고타의 고통을 표시한다. 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에서 모든 용서와 화해가 이룩된다. 그래서 십자가는 모든 성사를 앞서는 성사인 원초 성사(原初聖事)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가시관을 쓰고 못박히셨으며 갈증을 느끼셨기에 우리가 대사제의 제전에 참여할 수 있다.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이 온다.
날인
“성신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란 말씀에서 ‘날인’(捺印)은 무엇인가?
우리는 중요한 문서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한다. 이러한 표시로써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며 어떤 물건의 소유자임을 나타낸다. 옛날 목자(牧者)들은 가축에게 명패를 달거나 불로 인장을 찍어 소유자를 표시하였다. 견진자도 영구적인 인호(印號) 혹은 표징을 받는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군인이 어느 특정 지휘관에 속하고, 그에게 충성해야 함을 뜻하는 말인 인호를 신학에 도입하였다. “기름의 향기를 풍기며 주교의 손으로 날인됨으로써 견진자는 지워지지 않는 인호, 즉 주님의 날인을 받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닮게 만드시는 성신의 특은을 받는다”(견진성사 예식서 9항).
견진자는 날인을 받는다. 즉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왕권에 참여한다. 성사의 날인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하느님의 소유’라는 표시를 주어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한다. 날인은 품격(Character)이라는 그리스어의 뜻이다. 남에게 속한 노예임을 표시한 문신(文身)도 있지만 날인받은 노예의 주인이 주님이었다면 그분이 소유한 인간의 가치도 고양될 것이다. 견진자는 봉사자요 노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왕 중 왕, 최상의 통치자이기에 시종들을 높여줄 수 있다. 날인된 자는 주인인 주님을 섬길 의무가 있다. 주님은 식탁에서 시중을 들 것이고 성체성사 안에서 자신을 참된 양식으로 준다.
[경향잡지, 1988년 5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