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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사] 성체성사, 그 상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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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09-07-02

[전례와 상징] 성체성사, 그 상징들

 

 

하느님은 당연히 교회나 성사(聖事)보다 위대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사 집행 과정에서 예수님 또는 하느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으로서 직접 이를 행하심을 깨우쳐준다. 성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희망의 표지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례를 받고 혼인성사와 기타 성사 생활을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선하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신뢰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성사는 모두 교회의 예배이다. 그중 가장 직접적이고 명백한 예식이 성찬의 전례이다.

 

공동체인 교회는 이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사 자체임을 드러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성사의 빠스카 신비(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공동체적, 종말론적인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리스도는 미사 중에 현존하신다. 골고타에서 홀로 드리신 제사가 아니라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와 함께 기념하고 현실화하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맺음이며, 우리에게 장래 영광을 보증해 주는 빠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외적인 표정이다. 표징이란 무엇인가. 상징이란 말과 비슷하지만 구별할 필요가 있다. 표징(表懲)이란 일정한 내용을 대신하여 표시하는 것이며 기호(記號 : sign)라고도 한다. 그 표시에 따르는 실재를 생각나게 한다. 상징(symbol)은 서로 다른 사항이 어떤 유사성에 의하여 서로 관련을 맺게 되는 만들어 것이다. 즉 해석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표징이다. 종교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 영과 육이라는 두 세계가 교회 전례를 통하여 서로 만나게 된다. 이렇게 상징이란 표시하는 바를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내는 형태로서 본성상(本性上) 볼 수 없는 실재를 가지적(可知的)으로 현존케 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가장 자명한 표정은 빵과 포도주인 음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는 과정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먹고 마시며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인간적이면서도 거룩한 상징을 남겼다. 빵과 포도주는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주식으로 사용되었다. 음식을 통한 영양 공급을 상징하면서도 빵과 포도주는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지식을 통하여 만들어진 공정이 깃든 산물이다.

 

미사 중 제물 봉헌을 하며 사제는 “…땅을 가꾸어 얻은 이 빵을…” 하고 기도드린다. 또한 예수님은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요한 6,35.55).

 

빵은 일과 노동의 상징이요, 생명의 상징이며 함께 나누어질 경우 가족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포도주는 흥을 돋운다. 인간에게 활력과 의욕을 북돋아준다. 잔치상에 포도주를 빼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포도주를 나눔은 빵과 마찬가지로 나눔과 친교, 일치의 상징이며, 더구나 제사술[祭酒]로 사용한다는 것은 피를 흘림, 즉 생명의 희생을 뜻한다. 빵과 포도주는 각각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온전히 현존해 계시다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또한 유다인들에게는 식사가 종교적으로 축복이요 감사이다. 만찬은 희생 제사이며 기념이고 그리스도의 현존, 교회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예물 준비와 봉헌

 

미사 각 부분은 말씀의 전례까지도 모두 주님과 만나고 삶을 나누는 식탁이기에 중요한 상징과 표정으로 되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성찬 전례의 중심 부분만 몇 가지 살펴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은 축성할 제병을 미사 시작 전이나 봉헌 때 각자 스스로 제대 앞에 마련된 성합에 넣을 수 있도록 하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서 준비하였는데 신자들은 자기 몫 이상을 희사하였고 교회는 그것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하였다. 현재의 헌금도 이런 뜻이 남아 있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각각 들고 “…생명을 주는 음식, …영신 생명의 음료”가 되도록 기도한다. 이것은 고대 유다인들의 식탁 기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포도주에 몇 방울의 물을 타는 것은 나약한 한계성을 지닌 우리가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자의 자세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자신과 일상 생활을 바치는 온전한 정성이다.

 

 

성찬 기도

 

미사의 절정은 감사의 성찬 기도이다. 이 기도는 감사송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기도와 신자들의 응답인 “아멘”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찬 기도의 중심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와 “…내 피의 잔이다…”라는 내용이다. 이 기도와 동시에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하여 현존하시게 된다. 사제는 능력이 아니라 위임받은 대리로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를 행한다. 그래서 사제가 드리는 성찬 기도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름으로 바쳐지는 것이다.

 

사제가 성찬 기도를 시작하면서 준비한 제물 위에 십자 표시를 하고 두 손을 덮어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변화가 이룩되기를 기도한다.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 때 종을 치는데 이때 신자들은 흠숭의 표시를 하고 성체를 우러러보며 ‘내 주시요, 내 참 천주시로다’라고 기도할 수 있다. 이는 교황 비오 10세가 대사를 얻도록 한 기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면서 사제가 빵과 잔을 위로 들고 기도하는데 이는 기도와 동작의 일치를 보이며 우리의 봉헌과 구원을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찬식

 

주의 기도로 성찬식이 시작된다. 영성체 전 기도로 바친 것은 4세기부터이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생활과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자라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원하신다. 성찬식은 하느님 보살핌의 섭리이고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다짐이다. 우리를 배불리고 살게 하는 빵을 먹는 영성체는 미사 전체의 표징이요 열매이다.

 

 

빵을 나눔

 

최후 만찬 식탁에서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구약 시대에는 빵의 나눔이 가정 생활 관습이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나 그분께서 빵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았듯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나눔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깨닫는다. 빵의 작은 부분을 떼어 성작에 넣는 것은 5세기부터이고 빵 조각을 축성한 포도주에 섞어 먹던 관습에서 유래하였다.

 

‘천주의 어린 양’을 노래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을 면한 것처럼 주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간도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었음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평화의 인사

 

초대 교회에서는 미사 참여자들이 이웃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평화의 인사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 먼저 이웃과의 화해를 바라는 예수님 말씀을 상기시킨다(마태 5,23-24). 교회와 신자들 간의 일치, 용서를 상징한다. 또한 부활한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신 인사를 본받아 기쁨과 평화와 죄의 용서와 성령의 열매를 기원하는 것이다(요한 20,19-23 참조).

 

영성체는 축제의 핵심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고백으로 죄의 사함을 받고 이웃과 화해를 이루며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니 그 큰 은혜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축복과 파견

 

미사를 마무리하면서 사제는 공동체와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 찬미와 축복의 표시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축복이 되어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또한 신자 생활의 축제인 성체는 일상 생활에서도 축복의 힘으로 발전해야 한다. 성체는 감실에 갇힌 수인(囚人)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의 성사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사이고 파견이다. 우리는 자신이 복음 증거의 사도로서 파견된(missa) 자임을 명심하고 감사해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7 참조).

 

[경향잡지, 1988년 6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