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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성사] 사랑과 신의, 혼인 예식의 상징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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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09-07-02

[전례와 상징] 사랑과 신의, 혼인 예식의 상징과 의의

 

 

혼인은 무엇보다 하느님 창조 사업의 일부분이다. 남녀 두 사람의 자유로운 결합과 상호간의 신의와 사랑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표현과도 같이 창조 의지의 실현이다.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창세 2,24). 하느님의 의도는 남녀가 상호간에 사랑과 봉사로 상부 상조를 이룩하면서 육체적인 결합을 하도록 창조하였다. “아담(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창세 2,18). 대등한 협조자라는 표현으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라고 아담이 외쳤다.

 

예수께서는 창조주의 계획에 의거하여 혼인의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과 절대성을 선언하였다(마태 19,1-9참조).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19,6).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남녀는 ‘한 몸’을 이루고 축복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써 새 계약(마태 26,28 참조)을 맺고 스스로 교회의 신랑이 되셨다. 사도 바오로는 혼인의 신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4-25).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종속,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부부가 본받아야 할 산 규범이요 결합의 상징이 되었다. 자신을 희생하여 교회를 구원한 그리스도께서 부부애를 완성시켜 주시고 필요한 은혜를 내려주시며 창조주의 뜻에 따라 자녀를 낳아 잘 기르는 데 목적을 두도록 하였다.

 

 

혼인 풍습

 

역사적으로 혼인은 제도상으로나 공동체의 요소로서 또는 고대 종교의 행위로서 보더라도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세속적인 전통을 그리스도께서 성사(聖事)로서 받아들이고 고양(高揚)하였다. 따라서 고대의 결혼 풍습이나 관습이 지금도 전해지고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풍습을 보면 부모가 자녀들과 상의하지 않고서 아들 딸을 결합시켰다. 즉 양편 부모가 먼저 자녀들 약혼에 대하여 타협을 보고 신부의 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하였다. 또는 신랑이 신부의 집안에 납폐금을 내기도 하였다(창세 34,12 참조). 이스라엘은 근친혼이나 이민족과의 혼인을 금지하였고 바빌론 귀양살이 이후 혼인 계약서가 생겼다. 혼인식은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는 데서 성립되었다. 이때 신랑은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성대하게 신부를 맞이하고 잔치를 베푸는데 일주일 또는 그 이상 걸렸다. 혼례식 때 신부와 신랑은 화환으로 장식하였고 신부의 인도자와 함께 신랑이 동행하며 행렬 중에는 모인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다. 식사 중에 신부 아버지의 축복의 말씀이 종교적 축복을 대신하였고 식사 후 신랑 신부는 준비된 방으로 인도되었다. 이러한 의식은 10세기경 서구에 전하여졌다.

 

 

새 예식 절차

 

현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혼인 예식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편찬된 것으로 한국어판 ‘미사 중의 혼인 예식’ 차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입장식(신랑 신부의 영접과 인도)

(2) 말씀의 전례와 강론

(3) 혼례식(그리스도교 혼인의 결심 여부에 대한 질문, 신랑 신부의 동의, 주례 신부 또는 부제의 성혼 선언, 반지 축성과 교환)

(4) 신자들의 기도

(5) 성찬의 전례

(6) 미사 끝 강복

 

이 혼인 예식은 신자들이 혼인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으며 옛 풍습과 여러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과 상징들을 통하여 신랑 신부의 자각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을 증거한다. 이상의 예식 절차 중에서 상징성이 많은 입장식과 반지 축성 및 교환에 관하여서만 살피고자 한다.

 

 

입장식

 

신랑 신부의 입장 방식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서구의 현행 방식으로 주례자가 복사들을 대동하여 성당 입구로 나아가 대기하고 있는 신랑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성수(씻김과 정화와 성세의 기억)를 뿌린 후 제대 가까이 마련된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주례자가 제대에 서 있고 복사들이 성당 입구로 나아가 신랑과 신부와 가족들을 인도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지역 관습에 따라 신랑이 먼저 제대 앞까지 나아가 돌아서서, 아버지나 친족 대표가 인도하여 온 신부를 맞이하고 마련된 자리에 앉도록 하는 방법이다.

 

신랑 신부는 세 방법 중 하나를 주례자와 상의하여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예식장이나 성당에서조차 셋째의 방법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이 입장 절차가 남녀 평등을 무시하고 신랑 위주로 짜여졌으며 또 국적 불명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신부가 아버지의 인도로 신랑에게 간 사실은 이미 헬레니즘 시대에 있었고 영국 황태자의 혼인 방식이었으며 15세기경 교회에서도 받아들였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딸의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신부를 새 신랑에게 전수(傳受)하여 새로운 보호를 위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여 보호의 인수 인계다. 이 방식에서 남녀의 불평등이 의식된다면 첫째 방식대로 신랑 신부가 함께 발맞추어 제대 앞으로 나오도록 하면 된다(200주년 사목의안 128 참조).

 

신랑 신부의 좌석 위치는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전통의 혼례 방식은 모두 음양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자는 양(陽)이므로 동쪽(주례를 기준하여 왼쪽), 여자는 음(陰)이므로 서쪽(오른쪽)에 서야 하는데 가끔 뒤바뀌는 수도 있다.

 

원래 서구에서도 신랑은 신부를 자신의 왼편에 세웠다. 그것은 중세의 기사도 정신에서 약자의 보호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남자가 오른쪽에 휴대한 칼을 자유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오른편을 비워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염려는 없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위치가 문제될 것도 없다.

 

 

반지 축생과 교환

 

반지를 축성하는 기도문은 세 가지가 있다. 그러나 모두 새 결합의 표시, 신의와 사랑의 표시임을 설명한다. 고대 로마의 풍습으로는 신랑만이 신부에게 약혼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것은 신부를 예속물처럼 매어 신의를 일방적으로 요구한 의식이기에 교회는 13세기부터 상호간 신의의 표시로서 쌍방이 반지를 교환하도록 하였다.

 

축성은 물건이나 사람의 소유자가 그리스도임을 뜻한다. 반지는 축성 기도를 통하여 신랑 신부의 소유라기보다는 주님께 속하는 것이 된다. 이 반지는 단지 혼인의 맺음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는 약속이며 모든 은총이 거기서 샘솟는 것임을 상징한다. 축성한 반지는 기도하는 교회를 나타내며 하느님 사랑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표지이다.

 

왜 반지는 왼손 약지에 끼워주는가. 고대 의학은 왼손 약지에 심장으로 통하는 동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랑은 신부의 심장을 자신에게 결합시키는 저당물로서 반지를 선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반지를 끼는데 왼손, 오른손이 문제될 것이 없다.

 

 

혼인 강복

 

주례 사제가 주의 기도를 바친 후 신랑 신부를 향하여 두 손을 펴들고 세 가지 양식 중 하나를 택하여 축복의 기도를 바친다. 신부는 자비와 사랑과 평화의 은혜를, 그리고 신랑은 신의, 존경, 사랑을 갖도록 하며 양편 모두는 항구한 신앙 생활, 단일한 동거 생활, 복음의 증거, 훌륭한 부모, 장수를 기원한다.

 

[경향잡지, 1988년 10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 신부(대전 선화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