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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해성사] 고해성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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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3-05-13

[빛과 소금] 고해성사의 역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새로이 태어난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네 사람은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역경과 유혹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고해성사이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간접적이든(마태 16,18-19; 18,18), 직접적이든 (요한 20,21-23) 죄의 용서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해줄 권한을 나눠주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서간 여러 곳에서 초대교회의 화해 성사를 가늠하게 해주는 언급을 한다. 음행, 탐욕, 우상숭배 등의 중죄를 범한 이들은 공적으로 교회에서 추방을 당한다(1코린 5,13 2테살 3,14). 그리고 또 다시 그들을 교회가 용서한다(2코린5,7-10). 사도 바오로의 서간을 정리해보면 초대교회의 화해예절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겠다. 중죄(살인, 간음, 배교 등)를 지은 죄인은 공개적으로 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가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 다시 공적으로 용서를 받음으로써 죄의 용서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2세기경의 문헌인 <디다케>, 로마의 클레멘스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등의 글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증언을 정리하면, 죄를 범한 사람은 용서를 받기위해 교회에서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추방당한다. 그리고 일정한 보속과 회개의 기간을 보낸 후에 다시 공적으로 교회에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 예절은 일생에 있어서 오직 한 번만 받을 수 있었다. 초대교회가 박해를 통해서 단련된 신앙의 시대였기에 신자들의 열성은 참으로 대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기에 매우 가혹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다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참회예식은 그 공개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죄를 지은 신자들에게 용서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죄를 범하지 않은 수도자들과 신자들도 자신들을 위한 참회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7세기경 켈트지역(아일랜드)의 수도회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반복가능하고 비밀리에 거행되는 새로운 참회예식이 생겨났으며 이는 곧바로 전 교회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참회예식은 목록에 정해진 대로 죄에 따라 보속을 주었다. 사제들은 고해자의 죄를 듣고 보속을 주는데 일정하게 정해진 보속목록에 따라서 보속을 주었고 이를 수락하면 사죄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죄를 범한 사람들의 보속은 목록에 따라서 모두 같은 보속을 해야했으며 여러 가지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보속을 모두 수락해야 사죄를 받을 수 있었다. 중세 때에 잠시 공개참회로 복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12세기까지는 드물지만 공적인 참회예절이 거행되는 등 개별적인 화해예절과 공적인 화해예절이 공존하였다. 12세기 이후에는 개별적인 화해예절이 더욱 발전하여 죄를 고백할 때는 사제의 귀에 귓속말로 고백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귓속말 고백에 의해 고해의 비밀을 지켜야할 사제들의 의무가 규정되었으며 이는 1215년 라테란공의회 규정 21항에 의해 처음으로 입법화되기에 이르며 이 예식이 트리엔트공의회 예식서(1614년)에서 외적인 보완을 거친 뒤 제2차 바티칸공의회예식서(1975)로 승계되어 오늘에 이른다.

 

[2010년 3월 7일 사순 제3주일 인천주보, 이완희 신부(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만수1동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