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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준성사] 가톨릭 신자들은 왜 준성사를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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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4-09-21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 가톨릭 신자들은 왜 준성사를 사용하는가? (1)

 

 

들어가는 말

 

사진 한 장이 때로는 우리에게 커다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와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이나 장소를, 우리와 우리 생애에서 특별하고 의미 있고 소중한 기억이 깃든 것을 그 사진이 이어 주는 것이다. 그 사진처럼 신앙인인 우리와 하느님을 연결해 주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사랑을 되새기기 위하여 말, 동작, 상징, 물건을 이용한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은총과 배려를 말해 주는 교회의 특별한 표징은 전에 이미 살펴본 일곱 성사들이다. 그리고 일곱 성사들 외에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적인 은혜와 도움의 거룩한 표지가 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준성사(準聖事)라 한다.

 

 

준성사란?

 

준성사는 이 세상의 평범한 물건을 ‘거룩하게’ 만들고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를 ‘거룩한’ 행위로 만든다. 이러한 물건이나 행위는 성사들처럼 영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준성사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준성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성사와 다르다. 성사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예컨대, 성체를 모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신다고 하더라도, 그 자격 없음이 성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준성사는 성사와는 달리 자체로 거룩하지는 않으며, 다만 믿는 이들의 신앙과 교회의 기도를 통해 영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성사에는 일곱 가지가 있으나, 준성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다. 그 중에는 예로부터 오랫동안 이용되어 온 것들도 있고, 얼마 안 되었거나 특정한 지역에서만 이용되는 것들도 있다.

 

성사는 본질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믿고 실천해야 하는 것인 데 반해, 준성사는 신심 깊은 전통이다. 준성사는 교회에서 인준된 것이라 하더라도 교의에 속하지는 않는다. 준성사는 교회의 믿음과 기도에 바탕을 두지만, 실제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사용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

 

준성사에는 신심 행사, 축복, 기도, 행위, 물건, 장소, 시간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널리 사용되는 준성사는 대개 대사(大赦)를 가져다준다. 이 말은 준성사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우리가 지은 죄에 따르는 벌(잠벌)을 전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면제받는다는 뜻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영적인 위안이나 안내 또는 도움을 얻기 위해 준성사를 이용한다. 예컨대 가톨릭 신자가 병을 앓을 때 십자고상을 손에 쥐거나 묵주기도를 바치면 믿음의 정신으로 고통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록 준성사가 신앙의 부속물과 같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의미 있는 영성생활을 하는 데 강력한 도움이 된다.

 

 

널리 알려진 신심 행위들

 

가톨릭 신자들은 특정한 지향을 가지고 함께 모여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는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의 생애 중 어떤 장면에 대해서, 특별한 성인에 대해서, 신앙의 신비나 교의에 대해서 각별히 생각하거나 경의를 표하게 해 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많은 신심 행위들이 전례적인 의식들로 대체되었지만, 아직도 유효하고 훌륭한 기도 형태로 남아 있는 신심 행위들은 많다.

 

성체 강복 : 성체 강복은 장엄한 방식으로 성체를 공경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흠숭하는 데 초점을 맞춘 신심이 강조되던 시절에 시작되었다. 커다란 성체를 ‘성광’이라고 불리는 용기(容器)에 모셔 신자들이 볼 수 있게 한다. 신자들은 기도와 성가를 통하여 성체를 공경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특별히 기억한다. 이 의식은 사제가 집전하는데, 이때 사제는 ‘카파’라고 하는 전례복을 입는다.

 

9일기도 : 사도들은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9일 동안 기도하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본받아 특정한 지향을 두고 특정한 성인에게 9일 동안 기도를 바친다. 교회에서 공적으로 9일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또한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9일기도를 바치기도 한다.

 

그 밖의 신심 행위들 :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들의 신앙생활의 한 부분으로 삼는 신심 행위에는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성무일도나 기도서를 가지고 함께 바치는 기도 등이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에 따라 공동 참회, 치유 의식, 공동 병자 성사, 성령 기도 등도 널리 전파되었다.

 

 

축복, 동작과 자세

 

준성사에는 축복과 특정한 동작이나 자세도 포함된다.

 

축복은 가톨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들도 역시 신에게 영적인 복과 도움을 청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직자들, 즉 사제들과 부제들을 통하여 축복을 받는다. 성직자들은 성품성사를 통하여 축복할 수 있는 영적인 권능을 받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을 한다.

 

사제는 미사 때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신자들에게 전하고(전례적 축복), 또한 사람이나 장소나 물건 등에 하느님의 복이 내리기를 빌며 축복한다(사적 축복). 성직자가 축복할 때, 축복하는 행위 자체가 준성사가 되고, 성직자에게 축복을 받아 종교적이거나 신앙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물건 또한 준성사가 된다.

 

축복은 사제가 애완동물이나 자동차나 집, 여행하는 사람이나 운동선수, 그밖에 우리에게 중요한 사물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베풀 수 있다. 축복은 사제가 성수를 뿌리고 기도문을 바침으로써, 그리고 손을 축복받을 대상 위에 얹어 십자성호를 그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동작들과 자세들 중에도 영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할 때 두 무릎을 꿇고 바치며, 감실 앞에서 경의의 표시로 한쪽 무릎을 꿇는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일반적으로 머리를 숙인다.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으고 깍지를 끼는 것은 노예들에게 복종의 표시로 차꼬를 채우던 시절부터 유래한다. 두 손을 모으고 손가락을 위로 향하는 것은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상징의 흔적은 교회의 뾰족탑에서 볼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어떤 자세든 신심 행위에 알맞고 도움이 되는 자세로 기도할 수 있다.

 

 

십자성호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친숙하고 오래된 동작은 십자성호다. 십자성호는 간결하게 십자가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말함으로써 신앙의 기본 진리, 즉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救贖)을 표현한다.

 

우리가 성당에 들어갈 때 손가락으로 성수를 찍는 것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투신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정성껏 성수를 찍어 십자성호를 그을 때, 이 동작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되새기게 해 준다. 십자 성호는 전례 의식, 성사, 축복, 개인적인 기도, 신심 행위 등에 이용된다.

 

신자들은 오른손을 편 상태에서 손가락들을 모으고 그 끝을 이마, 가슴,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에 댐으로써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리고 사제는 공중으로 팔을 내밀어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축복하거나 또는 엄지손가락으로 축복하고자 하는 대상에 십자가를 긋기도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가톨릭출판사 문화총서 편집간사,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 가톨릭 신자들은 왜 준성사를 사용하는가? (2)

 

 

거룩한 요소들 - 물, 기름, 빛, 불

 

물은 예로부터 정화(淨化)의 상징이었고, 가톨릭교회 또한 성수를 영적인 정화의 상징으로 이해하였다. 교회는 일찍부터 성수를 사용하였다.

 

성수는 교회에서 전례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 가톨릭 신자는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자신의 정화를 기원하고 자신을 축복한다. 그리고 대개는 집에 성수를 가져다가 보관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또는 가족이 앓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이것을 뿌리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다. 성수는 부활 성야 미사 중에 축복된다.

 

기름은 힘을 상징하며, 교회는 영적인 힘을 나타내기 위해 성유를 사용한다. ‘예비신자 성유’는 세례 전에 예비신자에게 힘을 주기 위해, ‘병자 성유’는 병자성사 때 병자와 쇠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사용된다. 그밖에 도유(기름 바름)가 필요한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품성사에 ‘축성 성유’가 사용되는데, 이 성유는 특별히 올리브기름에 발삼 향을 섞어서 만든다. 성유는 성목요일에 각 교구의 주교좌성당에서 주교에 의해 축성된다.

 

빛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는 본래 어둠을 밝히는 데 쓰이는 것이지만, 또 다른 목적으로도 쓰인다. 초는 기쁨과 하느님 찬미를 상징한다. 가톨릭교회는 모든 전례를 거행할 때 초를 사용하며, 또한 신자 개인도 가정에서 초를 사용한다. 초는 2월2일 주님 봉헌 축일에 축복된다. 그리고 파스카 초는 부활 성야에 축성된다. 가톨릭 신자들은 축복된 초를 집에 가져다 두고 필요할 때 사용한다.

 

사순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가톨릭 신자는 성지를 태운 재를 이마에 십자 모양으로 받으면서,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라는 말씀을 따라 저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는 말씀을 들으며 회심 요청을 상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톨릭 신자는 사순시기를 의미 있게 시작하게 된다.

 

예수 부활 전 주일인 성지주일에, 가톨릭 신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한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축복된 성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성지를 집으로 가져가서 십자고상에 걸어 둔다. 이 성지는 하느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나타내는 표지다.

 

 

거룩한 물건들

 

십자가 또는 십자고상

 

그리스도교의 가장 의미 깊고 거룩한 상징은 십자가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는 고문과 사형의 도구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 얼마 되지 않은 교회 초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금기시된 표시였다. 그들은 십자가 대신에 다른 상징들, 예컨대 물고기, 비둘기, 어린양, 키로(?) 등을 사용했다(?는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철자 중 앞 두 글자인 X와 P를 합성한 것이다).

 

로마 제국 멸망 후, 십자가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을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변형된 형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문 자료에 의하면, 십자가의 변형된 형태는 무려 400여 가지에 이른다.

 

중세기에 들어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된 신심이 특히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널리 퍼졌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부착하여 그분의 수난을 표현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부착된 십자가를 ‘십자고상(苦像)’이라고 한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부착되지 않은 십자가를 사용하고, 가톨릭은 십자고상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은 가정에도 십자고상을 모셔두고, 더러는 펜던트처럼 몸에 걸치기도 한다. 십자가는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교회의 가장 거룩한 상징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은 최고로 불경스런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성상, 성패, 성화

 

가톨릭 신자들은 오랫동안 성상, 패, 그림을 개인적인 신심의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한때 성화상(聖畵像)이 우상 숭배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성화상 파괴 운동’이라 불리는 이단이 그리스도, 성인, 천사를 표현한 조각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것을 단죄한 것이다. 이에 교회는 787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성화상 파괴 운동을 그릇된 가르침으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동방의 교회들은 여전히 3차원적인 조각상의 사용을 자제했다. 오늘날에도 동방 교회들에서는 2차원적인 그림, 곧 이콘을 사용한다.

 

스카풀라는 수도자들의 복장에서 유래하는데, 일찍부터 평신도들이 수도자들의 기도를 통해 효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용했다. 띠에 연결해 매달거나 어깨에 부착한 작은 천 조각은 그것을 통해 전달되는 대사(大赦)나 영적 은사 때문에 신성시되었다.

 

스카풀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갈색 스카풀라와 녹색 스카풀라가 잘 알려져 있다. 스카풀라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패(메달)가 있다.

 

 

거룩한 장소들

 

가톨릭 신자에게 가장 존경스럽고 영광스런 장소는 미사가 봉헌되는 곳이자 공동체가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 모이는 곳인 교회다. 교회 묘지 또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고 죽은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표현되는 곳이기에 거룩한 장소다. 이스라엘과 로마는 그곳이 가진 역사적, 영적인 의미와 중요성 때문에 가톨릭 신자에게 거룩한 장소다.

 

이 밖에 성인과 관련된 곳이거나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거룩해진 장소들도 있다. 예컨대 성모님 발현지인 루르드와 파티마 같은 곳이 그러하다. 이 지역들은 기적이나 신비스런 현상이 일어난 곳이라고 교회가 공식으로 인정한 장소들이다. 이러한 곳에서는 교회의 공적 전례를 거행할 수 있다.

 

때로는 어떤 장소에서 거룩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알려지거나 그러한 소문이 퍼지기도 한다. 가령, 기적적인 형상이 나타나거나 성상(聖像)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러한 장소나 현상에 대한 주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한 곳에는 으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한낱 호기심에서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찾아다니기보다는 교회의 판단과 결정을 기다리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단 어떤 지역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되면, 교회 권위(교구)는 신중하고 면밀하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조사 끝에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장소에서는 교회의 공적인 전례를 거행할 수 없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가톨릭출판사 문화총서 편집간사,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 가톨릭 신자들은 왜 준성사를 사용하는가? (3)

 

 

거룩한 시기들

 

사도 시대 이래로 일요일은 주님의 날, 곧 주일이었다. 돌아가신 예수님이 일요일에 되살아나셨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전례(미사)에 참례하고 휴식을 취함으로써 주일을 지냈다.

 

주일 외에 특별히 거룩하게 지내는 날들이 있다(의무 대축일). 가톨릭 신자들은 이날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 의무 대축일은 1년에 4번 정도 지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공휴일과 겹치는 3개 대축일을 의무 대축일로 정하였다(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전례력은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과 신비들을 따라서 1년에 걸쳐서 몇몇 시기로 구분되고, 각 시기는 전례의 정신을 살리는 축제들과 관습들로써 기념된다.

 

대림 시기 - 대림 제1주일부터 12월 24일까지.

성탄 시기 - 12월 24일 성탄 전야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1월 6일 지난 첫 주일)까지.

사순 시기 -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 40일.

성삼일 -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부활 성야 미사 전까지.

부활 시기 - 부활 성야 미사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

연중 시기 - 1년 중 위의 시기들을 제외한 나머지 시기, 즉 성탄 시기가 끝나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 그리고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부터 대림 시기 전날까지.

 

 

마리아 공경과 성인 공경

 

마리아 신심

 

가톨릭 신자들에게 예수님 외에 성모 마리아만큼 사랑받고 공경 받는 이는 없다. 마리아 신심은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 행적에서 마리아가 수행한 역할에 근거한다.

 

마리아는 자신을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하시려는 하느님께 믿음을 바탕으로 응답하였다. 의혹과 고통이 있었겠지만, 끝내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기에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다.”(루카 1,42)라고 일컬어져서 마땅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선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하였다(431년, 에페소).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야겠기에,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살아내야겠기에 원죄에 물들지 않은 채로 잉태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을 때에도 동정성을 잃지 않았다. 마리아는 또한 무덤에서 육체가 썩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특은을 받았다. 마침내 마리아는 하늘에 들어 올려졌다.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가 받은 이러한 영적 특전들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신앙인의 표상이기 때문에 공경한다. 나아가 그런 마리아가 우리도 따라잡을 수 있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공경한다. 또한 마리아는 주님 앞에서 가장 탁월한 중개자이기 때문에 공경한다.

 

마리아 신심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가장 대중적이고 친숙한 기도인 성모송의 앞부분은 루카 복음에 나오는 ‘주님 탄생 예고’ 이야기에서 따 왔고, 마리아에게 청하는 뒷부분(“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은 마리아 신심이 대중화되던 중세기에 첨가되었다. 성모송은 기본적으로 마리아 신학을 요약한 것이다.

 

묵주기도는 도미니코 성인에 의해서 널리 전해졌다. 12세기 들어서 대중적인 신심이 마리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믿음의 신비들을 묵상하는 동안에 수도자들은 시편을 노래했고, 평신도들은 묵주 알을 굴리면서 성모송을 바쳤다. 시편이 15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묵주 기도는 15단에 성모송 150번을 바쳤다.

 

다른 마리아 신심도 역시 중세기에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에 수도자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해 종을 쳤는데, 이것이 나중에 하루에 세 차례 종을 쳐서 기도 시간을 알리고, 그러면 마리아께 특별한 기도를 바치는 삼종 기도가 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는 마리아의 발현, 특히 루르드와 파티마의 발현을 통해 마리아 신심이 더욱 전파되었다.

 

이러한 신심들은 믿음이 요구되는 교의가 아니라 다만 사적 계시의 범주에 속하지만, 신앙을 활기차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무시하거나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신심들이 구원의 역사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가리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부름으로써 참된 마리아 신심을 복구하였다. “어머니께서는 …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서 빛나고 계신다.”(교의헌장 68항)

 

성인 공경

 

가톨릭 신자들의 믿음의 생활에서는 성인들도 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우리는 성인들이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지금 천당에서 지내며, 우리를 위해 중개한다고 믿는다.

 

성인 공경은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천당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성인은 시복시성된, 즉 교회 권위에 의해서 공경을 받고 영광을 누릴 만하다고 선포된 이를 말한다. 성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덕행의 모범이며, 그런 점에서 영광을 누리고 공경의 대상이 된다. 과장된 표현으로 말미암아 더러 오해되는 바와는 달리, 가톨릭 신자들은 성인을 흠숭하지 않는다.

 

성인을 공경하는 관습은 박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순교자를 그리스도인의 이상형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일생을 거룩하게 살던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그를 통해 기도했다. 그를 기리는 경당을 지었고, 그의 묘소나 출생지를 순례했다.

 

중세기 들어 대중적인 신심이 절정에 이르면서, 성인이 수적으로 양산되고, 전설 같은 성인 이야기들이 널리 나돌았으며, 심지어는 전례보다도 성인 공경이 더 중시되었다. 성인의 유해가 거래되기도 했다. 교회는 이를 규제할 필요성을 느껴 12세기에 시복시성 절차를 규정했으나, 이 규정은 종교개혁 이후까지도 유명무실했다. 오늘날에는 교황청 시성성이 시복시성 업무를 관장한다.

 

성인 공경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교회는 1969년에 200여 명의 성인을 성인 목록과 전례력에서 삭제했다. 대개는 실제로 생존 사실이 확인되지 않거나 역사적 근거가 없는 설화에 근거한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중에는 여행자의 수호성인인 성 크리스토포로처럼 아직도 인기 있는 성인들도 있다.

 

어떤 성인들은 특별한 이유로 해서 공경 받는다. 물건을 잃은 사람은 성 안토니오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은 성 유다를 기억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목의 질병 치료에 도움을 준 성 블라시오의 축일(2월 3일)이면 목을 축복받고, 자연 만물을 사랑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 4일)에는 짐승들이 축복을 받게 한다.

 

몇몇 성인은 세속적인 영역에서도 인기를 누린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초대 교회의 주교였던 성 발렌티노가, 성탄절에는 미라의 주교 성 니콜라오(산타클로스)가 특히 사랑받는다.

 

성인의 유해는 성인과 직접 관련되기에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공경의 대상이다. 이 전통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들의 유해나 유품을 모아서 제대에 안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며, 한때는 의무 조항이기도 했다. 어쨌든 성인의 유해가 매매되어서는 안 된다. 유해에 관한 기록은 시성성에 의해 규제된다.

 

성인 공경이 신자의 영성생활에 격려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 흠숭 다음의 일이어야 한다. 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어떤 남용이나 과도함이나 결함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을 때에 그것들을 방지하고 시정하도록 노력하며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하느님께 더욱 충만한 찬미가 되도록 개선하기를 권고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인 공경은 복잡한 외적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랑의 강렬한 실천에 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교의헌장 51항)

 

 

맺는 말

 

준성사들, 신심운동들, 성인 공경은 개인의 신앙에, 그리고 전례와 성사들에 참례하여 공적으로 하느님을 흠숭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더 잘 알아차리도록 이끌어 준다. 나아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9)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해 준다. 그러나 준성사들을 사용하고 신심운동에 참여하고 성인을 공경하는 것은 신자의 개인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며, 가톨릭 교의에 해당하지 않는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월호, 이석규 베드로(가톨릭출판사 문화총서 편집간사,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