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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사]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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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05-04-13

오, 거룩한 성체여

오, 놀라운 신비여

오, 놀라운 희생이여

-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

 

 

우리 수도원에는 주일마다 저녁기도 끝에 성체강복을 하는 아름다운 전례 전통이 있다. 한 주간을 새롭게 시작하는 주일 저녁 해가 질 무렵 수도형제들은 온 마음으로 성광 안 성체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시간의 주인이신 그분께 한 주간을 봉헌하고 강복을 받고 또다시 한 주간을 하느님의 보호 안에서 시작한다. 

 

그 얼마나 놀라운 신비란 말인가,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작은 빵 덩이에 계시다니!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풀 수도 없는 신비 자체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신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교회는 마르지 않는 사랑의 신비를 신자들에게 맛보게 하고자 2004년 10월부터 2005년 10월까지를 ‘성체성사의 해’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4년 10월 10일에서 17일까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로 성체성사의 해가 시작되고, ‘교회의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체성사’라는 주제로 2005년 10월 2일-29일까지 바티칸에서 열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끝으로 성체성사의 해가 마감된다. 이 기간 사이에 세계 젊은이들이 2005년 8월 16일부터 21일까지 독일 쾰른에서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모이는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된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성체성사의 해를 경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 교구의 2005년 사목 교서에서 교구장들은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교구민들이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여러 행사들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또 거창한 축제냐 하고 의구심과 회의를 품을 수 있고 식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 해는 어떤 외적인 행사나 잔치가 목적이 아니다. 내적으로 쇄신하고 내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기로 결심을 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해’를 마련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관상의 삶 안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모든 계층의 신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사실 성체성사의 해를 교회가 설정한 이유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 계획이라는 큰 틀 안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교황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헌들 가운데 특히 성체성사의 해를 시작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4년 10월 7일에 발표한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를 중심으로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알아보겠다.

 

 

1. 성체성사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대희년을 거쳐온 여정의 정점이며 종합이다

 

교회는 새로운 변화의 길을 모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자신의 신원과 목적을 새롭게 이해했다. 이러한 교회는 새 천년의 대희년과 묵주기도의 해를 거치면서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추종하는 길을 걸어 나갔고, 이제 새로운 추진력으로 새 천년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을 알아뵙고 주님께 힘을 얻고자 한다. 

 

1)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정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에서 교황은, 우리 믿음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탁월하게 현존하시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열정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견한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의 목적이시고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시며 인류의 중심이시고, 모든 마음의 기쁨이시며 그 갈망의 충족이시다’(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45항)고 선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그 열정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6항) 

 

공의회를 통하여 신자들은 교회의 본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였고, 신앙의 신비뿐 아니라 현세 사물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바라봄으로써 그에 대한 더욱 명확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강생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신비와 인간의 신비가 함께 계시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구원과 충만함을 얻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가 천명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관을 1979년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켰다. 

 

2) 성찬의 해인 대희년(2000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뜨거운 신앙은 대희년을 준비하고 맞이하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절정에 다다랐다. 이 대희년의 중심에 바로 성체성사가 있다. 왜냐하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은 이미 1994년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은 열렬한 성찬의 해가 될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20세기 전에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을 취하셨던 구세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적 생명의 원천으로서 인류에게 계속하여 내어주십니다.”(55항) 하고 천명했다. 

 

대희년을 맞이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 살아계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극대화하고자 로마에서 ‘세계성체대회’가 개최되었다. 성체대회 이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희년을 준비하는 일환으로 1998년 『주님의 날』(Dies Domini)이라는 교서를 통해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신자들이 모이는 날인 주일과 주일 성찬례를 강조하고 심화했다. 

 

3) 묵주기도의 해와 빛의 신비(2002년 10월-2003년 10월)

 

대희년을 마무리하면서 교황은 2001년 『새 천년기』라는 교서를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바라보아야 할 얼굴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고, 바로 이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출발은 참된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는 주일과 성찬례에서 나아가게 된다. 

 

교회는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묵주기도의 해를 선포하고 교황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발표하면서, 성모 마리아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주제로 돌아갔으며,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다시 한번 장려하였다. 여기서 교황은 이 전통적인 기도를 성모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신비를 바라보는 관상기도라고 정의한다. 더 나아가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함으로써 수세기에 걸친 오랜 전통을 발전시켜, 이 탁월한 형태의 관상을 더욱 완전한 복음의 요약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빛의 신비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최후 만찬에서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4) 묵주기도의 해에서 성체성사의 해로(2004년 10월-2005년 10월)

 

교황은 묵주기도의 해 중간인 2003년 성목요일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발표하여 성체성사와 교회의 뗄 수 없는 생생한 관계 안에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조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위대한 신비에 맞갖은 예배를 드릴 때 신자들이 모두 합당한 공경으로 성찬의 희생제사를 거행하도록 당부한다. 무엇보다도, 성체성사의 영성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제시하고, 묵주기도의 해에 “성찬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를 그 본보기로 든다. 

 

성체성사의 해는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이라는 주제에 변함없이 충실하면서도,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풍요로워진 배경 위에서 시작된다. 곧 성체성사의 해는 교회가 걸어온 여정의 정점이며 그 여정을 종합하는 해이다. 교회가 도달할 최종 목적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체성사가 이 지상에서 ‘오늘(hodie)’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매우 특별하고 탁월한 방식이기에, 교회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고 성체성사에서 생명과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2. 빛의 신비인 성체성사의 해를 경축하는 영적 의미

 

성체성사의 해에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에 영적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해야 할 분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관상하도록 촉구하는 해이다. 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성체성사 안에서 참으로 발견하고, 성체성사를 진실한 마음으로 거행하고, 성체와 성혈을 공경하고, 마침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하고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 뒤를 따라야 한다.

 

교황은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에서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이러한 진리는 일상적인 신앙 경험을 표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신비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습니다”(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미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절정이라고 선포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당신의 약속을 특별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성체성사를 통하여 성취하시고 실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 현존의 위대한 신비이다.

 

2000년 전 최후 만찬 석상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제사와 식사를 제정하시고, 이로써 교회 안에 십자가 제사(sacrificium crucis)가 효과적으로 현존하도록 하셨다. 주님께서는 빵과 잔을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라, 먹어라, 마셔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셨다. 그래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가 주님 친히 하신 일과 당신을 기념하여 행하라고 제자들에게 맡겨주신 이 신비를 완수한다. 교회는 성찬 전례 거행의 모든 부분을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에 맞추어놓았다. 

 

성찬 전례에 들어가서 예물 준비 때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봉헌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손에 드셨던 것과 같은 요소들이다. 감사기도로써 모든 구원 업적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예물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 한 빵을 뗌으로써(fractio panis) 믿는 이들의 일치를 드러내고,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손에서 받아 모신 것과 같이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는 빛의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이다(요한 8,12). 첫 창조 때 하느님께서 빛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창세 1장 참조), 새로운 빛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상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다. 그래서 성체성사의 해는 빛의 해이며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해이다. 이 빛 안에서 신자들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3. 성체성사의 해에 맛보는 교회의 친교와, 선교의 열정과, 인류에 대한 봉사

 

성체성사의 해에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강한 체험과 충동을 느낀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 자체인 것이다. 이 은혜는 첫째로 친교(koinonia)의 은혜이다. 교회의 일치와 친교의 원천이 바로 성체성사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통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사실이 더욱 밝혀지고 구현된다. 따라서 교회는 성체성사 안에서 친교와 일치의 원천을 발견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님의 날인 주일에 성찬례를 하러 교회의 각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일 때 교회의 친교가 실현된다.

 

둘째로 성체성사는 교회 본연의 의무인 선교의 원리이고 봉사의 원천으로 드러난다. 성체성사는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격려한다. 특히 미사 끝에 하는 파견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임무로서 복음을 널리 전하고 사회와 문화 전체에 그리스도교 가치를 고취시키도록 노력하라는 권유이다. 성체성사의 은혜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안에 참으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된다. 

 

셋째로 성체성사는 전 인류를 위한 연대에 힘쓰고, 정의롭고 우애로운 사회 건설에 투신하도록 재촉하며,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를 격려한다. 영성체에서 오는 친근감으로 성찬 제정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처럼(요한 13장)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가난한 이들과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애덕을 충만히 실현한다.

 

 

4. 교황의 실천적 권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성체성사의 해를 지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별교회 주교들의 재량에 맡긴다. 덧붙여 각 주교들에게 부탁하기를, ‘성체성사의 해’는 매우 깊은 영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므로, 개별교회의 사목 계획들을 조명함으로써 이 계획들이 신자들의 영성생활과 지역교회의 활동들을 성장시키는 바로 그 신비 안에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한 부분인 성체성사의 차원을 강조하라고 말한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5항 참조).

 

더 나아가 교황은 성체성사의 해 동안 모든 계층의 신자들이 주일 성찬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욱 자주 성체 앞에 나아가 조배하고, 성체강복을 거행하는 등 성체성사와 관련된 공동기도와 개인기도를 하도록 강하게 권고한다. 

 

이미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체성사의 해를 미리 내다보면서 교서 『새 천년기』에서 종합적으로 말한 바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길을 걸으시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빵을 떼어 주실 때’(루가 24,35)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어있게 하시고, 즉시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우리는 주님을 뵈었다’(요한 20,25)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형제자매들에게 달려갈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59항).

 

[사목, 2005년 2월호, 인영균(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