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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해성사]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선물,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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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8-12-14

[고해성사, 사랑의 체험]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선물, 고해성사

 

 

본당 사목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사제 생활의 꽃은 본당신부라고 했던가요? 오랫동안 묵혀 있던 수단을 꺼내 입고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거행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본당신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통합사목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데이터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한국교회의 사목현실이 오랜만에 본당에 오니 피부에 여실히 와 닿습니다. 본당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점차 신자들이 고해성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사목자로서 근심이 더 커졌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아담이 몸을 숨긴 이유는 알몸으로 당신 앞에 서기가 부끄러워서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알몸이어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었지만 죄를 범하고 나서는 부끄러워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자유’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이와 동시에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는 ‘경계境界’도 주셨습니다. 그 경계가 ‘선악과’입니다.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살아야 하는 피조물이어서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에서 드러나듯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피조물이 그 경계를 넘어선 것을 말합니다(창세 3,5 참조). 이 사건을 두고 어떤 영성가는 영어의 표현을 빌려 “EGO : Edging God Out”라고 했습니다. 즉 나의 에고가 내 안에서 하느님을 밀어내고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신 것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입으로 고백하고 뉘우쳐서 에덴동산의 자유와 기쁨을 다시 회복하도록 초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저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하고 자신의 잘못이 당신이 준 여자 때문이라며 하느님 탓으로 돌립니다. 교묘하게 자신이 지은 죄의 수치심을 피하려고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이 죄를 지어 얻은 것은 죽을 운명에 처한 허무한 인생이며 그가 잃은 것은 에덴, 즉 ‘기쁨’을 잃은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과 아담과의 관계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자존심, 수치심, 두려움, 질투, 탐욕, 콤플렉스 등 에고가 만들어 놓은 온갖 방어막 속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

 

사회범죄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1980년대 초 미국 범죄 심리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이 처음으로 만든 이론입니다. 누군가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을 깼는데 이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부터 계속해서 파괴가 일어나고 나중에는 더 심각한 파괴와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실제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뉴욕 시에는 범죄가 끊이지 않아서 사람들이 살기에 불안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당선된 뉴욕 시장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받아들여 무엇보다 먼저 뉴욕 지하철과 도시 곳곳의 낙서부터 깨끗이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뉴욕의 범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이런 사회적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의 죄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방치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격하듯 누군가 골목길 담장 아래 양심을 저버리고 슬쩍 쓰레기를 놓고 가면 어느 순간 그 주변이 쓰레기장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리 내면에 양심을 어기고 행한 죄악과 잘못들을 방치해 두면 우리 삶도 금방 죄로 오염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은 점점 더 음침한 도시처럼 변해서 우울하고 불안한 삶이 됩니다. 우리를 추락시킨 깨진 유리창은 무엇인지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4-5)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큰 무리의 군중과 함께 예리코를 떠나실 때 누군가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입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눈먼 거지의 외침이 사람들에게는 성가시게 졸라대는 시끄러운 소리로 들리지만 예수님은 그의 간절한 마음을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그분께 나아갑니다. 겉옷은 야외에서 밤을 지새우며 살아야 하는 거지에게는 추위를 막고 자신의 몸을 가리고 감쌀 수 있는 유일한 보호막입니다. 그러니 이 겉옷을 벗어 던진다는 것은 더 이상 보호막에 숨어 있는 눈먼 거지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그는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바르티매오가 왜 눈이 멀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은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자 그는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마르 10,46-52 참조). 육신의 눈만 뜬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이 열려 그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주님을 모르고 살던 이전의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시는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비와 사랑의 선물, 고해성사

 

복음 속의 바르티매오는 우리 영혼의 표상입니다. 설령 우리가 육신의 눈이 성하다 하여도 ‘영혼의 눈에 낀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지 않으면’*눈먼 사람이고 헐벗은 거지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무엇 때문에 눈먼 이가 되었는지요?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그분을 떠난 때는 언제인지요? 지금 설령 미사참례도 잘하고 성당에서 봉사활동까지 하고 있지만 당신은 자신의 에고를 주인으로 모시고 수치심과 자존심 뒤에 숨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깨진 유리창처럼 계속 당신을 오염시키는 당신 안에 방치되어 있는 죄는 없는지요?

 

하느님의 자비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떠난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마치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길처럼, 주님께서는 한순간도 우리가 떠난 길목에서 눈을 떼신 적이 없습니다. 그 자비로우신 주님의 기다림은 교회를 통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빨갛게 불이 켜진 고해소는 사제가 주님의 귀와 입을 대신하여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를 만나 얼싸 안는 장소이고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가 다시 눈을 뜨게 되어 주님을 만나 뵙는 장소입니다. 교회의 고해성사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선물인 것입니다. 또한 잃어버린 에덴, 그 기쁨과 행복을 위한 은총의 부르심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참된 나와 마주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온갖 핑계를 대고 남 탓을 하면서 몸을 숨기고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벌떡 일어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주님께 자비를 청하며 고해소를 향해 가시겠습니까?

 

* 구상 시인의 “말씀의 실상”이라는 시에서 가져온 표현.

 

전원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영성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도봉산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저서로 『말씀으로 아침을 열다 1·2』가 있다.

 

[생활성서, 2018년 12월호, 전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