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명동 대성당 코스트홀 1층에 걸린 사진입니다.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 현관에 걸린 그림 복사본으로 조선으로 떠나는 선교사들의 파견(1864년)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2023년 2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 그림 아래 있는 사진 설명에 잘못 알려진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추가 설명을 올립니다. 성 앵베르 주교와 구노 작곡가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이 되면 우리는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가들을 부른다. 한편으로 그이들을 본받으며 살아갈 결심을 새롭게 다지기도 하면서 부르는 가톨릭 성가 283번에서 289번까지의 성가들이다. 이 성가들 중에서 284번 ‘무궁무진세에’는 다른 성가들에 비해서 덜 불리기는 하지만, 프랑스 근대 음악의 거장인 구노(Ch. Fr. Gounod, 1818-1893)가 조선의 순교자들을 기리며 만든 ‘명품’ 성가다. 이 성가와 관련된 뭉클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로마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구노는 멀고먼 극동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세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내 이들을 애도하며 기리는 마음으로 성가를 만들었다. 이들은 1839년 기해교난 때 순교한 성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 성 나 베드로(모방) 신부, 성 정 야고보(샤스탕) 신부다. 그리고 구노는 이때의 감격과 열정을 떨쳐내지 못했던지 7년 뒤인 1846년에 사제가 되고자 그 순교자들이 공부하던 생 슐피스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비록 2년 뒤에 음악가로 되돌아가고 말았지만. 그런데 이 일화와 관련해서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도 전해 온다. 구노가 앵베르 주교와 신학교 동기동창이었다거나 또는 신학교 시절에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그런데 앵베르 주교가 사제품을 받고 1년 뒤 중국으로 선교를 떠난 때가 1820년이라는 점에서 그때 고작 2살인 구노와 교분을 나누었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러한 대작곡가가 한국교회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성가 한 곡을 만들어 헌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크게 의미 있는 일일 터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9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교리교육위원회 위원)의 글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