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앨범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유스티노(6.1)

유스티노(6.1)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유스티노 (Justin)
축일 6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부, 순교자, 호교론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00/110?-165년
같은이름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누스, 저스틴
성인자료실
제목 20세기 한 무명 화가의 성 유스티노
다음글 자크 칼로의 성 유스티노 순교자
이전글 앙드레 테베의 성 유스티노 순교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2 조회수981 추천수0 첨부파일수1

교부 성 유스티노39.jpg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37) 성 유스티노


이교도 대상으로 호교론 집필

   

  

- 20세기 한 무명 화가가 그린 성 유스티노. 토가를 걸치고 있는 로마 귀족의 모습으로 그렸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도 사실은 2000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에 의해 전해지게 된 것임을 잊게 되는데 성 유스티노는 이런 점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신앙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스티노(100-165년)는 그리스 사람으로 사마리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135년 경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당대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수사학, 시, 역사,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스토아학파나 피타고라스학파 등 당시의 철학에서 진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유스티노가 에페소의 바닷가를 걷고 있던 중 한 노인을 만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 관해 듣게 되었다.

  

“나의 영혼은 즉시 끓어올랐고,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엄습해왔다. 그리고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유익하고 확실한 철학임을 깨닫게 되었다.”

  

노인과의 섬광 같은 만남을 술회한 내용으로 그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진리를 마침내 그리스도교에서 찾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150년경에는 로마로 건너가서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을 가르쳤으며, 호교론 학파를 설립하였고, 대표적인 저서들을 저술했다.

  

성 유스티노의 중요성은 성 클레멘스를 비롯한 초기 그리스도교 학자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저술을 집필한 반면 그는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방어하는 글들, 이른바 호교론을 썼다는 데에 있다.

  

유스티노가 살았던 로마 제국은 수천 종류의 신이 존재했던 다신교 국가였으며 당시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는 존중되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수많은 종교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그리스도교인들은 근친상간을 한다는 둥, 식육을 먹는다는 둥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었고, 세례와 성체성사는 이상한 마술로 여겨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스티노는 그리스도 교인들이 하느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한 신의 모습임을 알림으로써 당시 떠돌던 흉흉한 소문들이 근거 없음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정직하게 상업을 하며, 이웃과 평화를 나누는 사람들임을 알렸다.

  

유스티노가 살았을 무렵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오늘날의 형태로 완벽하게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기 위해 하느님이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못 박힘을 통해 하느님이 죄와 마귀의 힘을 누르고 인간을 구원했음을 알렸다.

  

또한 부활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것임을 알렸으며, 타 종교와 구별되는 세례 성사와 성체 성사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술을 남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교리들이 바로 이런 학자들의 덕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성 유스티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성적 방어와 반대파의 주장을 누르는 빼어난 논쟁 능력은 많은 적들을 낳게 되었고, 마침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통치 시절인 165년 6명의 교인들과 함께 참수형을 당했다. 대표적 저서로 ‘호교론’과 ‘트리폰과의 대화’가 전해지고 있다.

  

성 유스티노를 그린 명화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필자가 찾은 유일한 이 그림은 20세기에 한 무명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성 유스티노를 토가를 걸치고 있는 로마 귀족의 모습으로 그렸다.

  

좌측에 SPQR이라고 쓴 대는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약자로,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을 뜻하며 유스티노가 로마제국 시대에 살았음을 암시한다. 그림에서와 같이 학자나 복음 저자를 그릴 때 흔히 책이나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가톨릭신문, 2010년 5월 2일, 고종희(한양여대 교수)]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Total 0 ]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