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심수녀회, 용산신학교 사제 3인(6·25 전쟁 중 북한군에 납치) 기념비 제막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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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10-01 | 조회수18 | 추천수0 | |
성심수녀회, 용산신학교 사제 3인 기념비 제막식 6·25 전쟁 중 북한군에 납치…신앙 모범에 존경과 감사 표시
- 옛 용산신학교 자리인 성심여자중·고등학교와 성심수녀원에서 거행된 3인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 사제 기념비 제막식 후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심수녀회 제공
성심수녀회(한화관구장 최혜영 엘리사벳 수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서울대교구 용산신학교에서 북한군에게 납치된 3인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 사제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을 9월 11일 옛 용산신학교 자리인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뒤편에서 거행했다.
당시 용산신학교에서 학교를 두고 피신할 수 없다며 남았던 이재현(요셉·1909~1950?) 신부와 백남창(아가피토·1920~1950?) 신부, 정진구(마티아·1920~1950?) 신부는 1950년 9월 17일 북으로 패주하던 북한군에 의해 도서실에 감금됐다가 어디론가 연행된 뒤 행방을 감췄다.
용산신학교 교장이었던 이 신부는 6·25전쟁 중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모시고 공산 치하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를 봉헌하는 등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소신학교였던 성신중학교 교사 백 신부도 용산신학교에 남아 피신을 거부했다. 동성중학교 교사였던 정 신부는 성모병원 용산 분원 서무계장으로 위장해 있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43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황응천 신부(스테파노·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주임)가 축복한 기념비는 1950년 당시 신학교 4학년생으로 세 신부의 납치를 목격한 김항식(안드레아) 씨의 기증으로 세워졌다. 김 씨는 끝까지 사제로 남았던 세 신부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를 기리고자 기금을 조성해 기념비 설치를 청원했다.
용산신학교는 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예수성심신학교(1885~1942)가 강원도 부엉골에서 이전한 신학교로 이후 다시 혜화동으로 옮겨갔으며 옛 용산신학교 자리는 현재 성심학원과 성심수녀회에서 활용하고 있다.
- 옛 용산신학교 자리인 성심여자중·고등학교와 성심수녀원에 설치된 3인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 사제 기념비. 성심수녀회 제공
[가톨릭신문, 2024년 9월 29일, 박효주 기자]
6·25 때 용산 신학교 지키다 순교한 세 사제 기념비 제막 ‘하느님의 종’ 이재현·백남창·정진구 신부 기념비, 예수성심신학교 성당 앞 설치
- 이재현 · 백남창 · 정진구 신부 기념비 제막식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6·25전쟁 때 신학교를 지키던 세 명의 사제가 북한군에 납치된 자리에 11일 기념비가 세워졌다. 1950년 9월 17일 ‘하느님의 종’ 이재현(요셉)·백남창(아가피토)·정진구(마티아) 신부가 북한군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지 74년 만이다. 건립 비용은 스승의 피랍 현장을 목격하고 생생히 기억하는 당시 소신학교 4학년 김항식(안드레아, 92)씨가 전담했다.
이날 기념비 제막식은 서울 원효로 성심여자중·고등학교 내 예수성심신학교 성당(피랍 당시 용산소신학교 성당) 앞에서 거행됐다. 성심수녀회 한화관구장 최혜영 수녀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송란희(가밀라) 학술이사 등 기념비 제작과 설치에 힘쓴 이들이 참여했다. 건립을 제안한 김항식씨는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그가 신부들이 납치되던 상황을 증언한 내용 일부가 제2독서로 낭독됐다.
제막식을 주례한 황응천(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주임) 신부는 “세 분의 신부님이 지켜내신 것은 정말 커다란 신앙”이라며 “우리 순교 역사가 여전히 이 땅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피랍 당시 이재현·백남창 신부는 소신학교(성신중학교) 교장과 교사였고, 동성중학교 교사인 정진구 신부는 소신학교로 피신한 상태였다. “양 떼를 두고 피신할 수 없다”며 꿋꿋이 학교를 지키던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도서실에 감금됐다가 어디론가 연행됐다.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정황상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세 신부는 시복 대상자인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에 포함돼 ‘하느님의 종’이 됐다.
- 서울 원효로 성심여자중·고등학교 내 예수성심성당(옛 용산 소신학교 성당) 앞에 설치된 이재현·백남창·정진구 신부 기념비.
‘근·현대 신앙의 증인’이라는 머리말을 단 기념비에는 장소 설명과 세 신부의 생몰년 등이 수록됐다. 하단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주교회의가 작성한 약전을 읽을 수 있다. 기증자 김항식씨에 관한 정보도 기념비 한편에 기록됐다. 그가 황해도 해주본당 출신으로 1947년 9월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며, 세 신부를 ‘양들을 지키는 목자’로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기념비 설립을 발의했다는 내용이다.
기념비 설립 과정에는 가톨릭평화신문의 숨은 노력도 있었다. 김항식씨와 옛 신학교 건물을 관리하는 성심수녀회 사이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앞서 김씨는 지난 5월 “도움을 받아 모은 돈 500만 원으로 세 신부님 기념비를 세우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이 그린 피랍 당시 신학교 약도와 회고록을 본지에 보내왔다. 본지는 성심수녀회에 이같은 김씨의 뜻을 전달하며 기념비 설치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수녀회는 내부 회의를 거쳐 김씨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기념비를 제작하게 됐다.
김씨는 11일 본지에 보낸 메시지에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촌로의 간절한 소망이었다”며 “꿈이 이뤄져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9월 29일, 이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