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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산의 엘르아잘 김차희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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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14 조회수252 추천수1

[교회사 산책 - 밭에 묻힌 보물 1] “구산의 엘르아잘 김차희의 순교”

 

 

“엘르아잘은 오랜 친분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인정을 이용해서 자기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마카베오 하 6,22)

 

살고 싶어하며 죽음을 꺼리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더구나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고 신의를 지켜서 널리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면 더욱 생사가 교차하는 위기의 순간에, 살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평소 이웃에게 베푼 후의의 덕택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카베오서의 말씀에서 유대의 율법학자 엘르아잘은 복음서의 예수님께서 자주 위선자로 꾸짖는 바라사이나 율법학자와는 사뭇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기 생활을 더럽히고 살아가는 것보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자진하여 죽음을 택합니다.

 

그가 입에서 돼지고기를 뱉어버린 것은 단순히 그 고기가 유대인들이 꺼려하는 불결한 음식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박해자들이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한 것은 하느님이 내려주신 신앙의 계명을 하나씩 무너뜨려 마침내는 거룩한 하느님의 법을 송두리 채 전복시키려는 음모이며, 유대인을 하느님 신앙에서 떠나도록 하려는 간교한 저의가 깔린 행위였던 것입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이 희생제를 관장하는 사람 중에서 엘르아잘과 오랜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따로 불러, 그에게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다른 고기를 준비했다가 그것을 가져오도록 권하면서 왕의 명령대로 희생제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체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순간에 닥치면 저같은 나약하면서도 약간 잘난 체하는 사람은 그것 참 잘되었다 하면서 박수치고 시키는 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르아잘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만일 그런 짓을 한다면 구십이 다 된 엘르아잘이 이방인들의 풍습을 따랐다고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남지 않은 목숨이 아까와서 그런 가장된 행동을 한다면 그들도 나 때문에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될 것이고 이 늙은이에게 치욕과 불명예가 돌아올 것입니다.”

 

“내가 당장에는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도리는 없을 것입니다"(마카베오 하 6,26)

 

그렇습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육신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그 영혼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하느님은 영혼과 육신을 동시에 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십니다.”(루가 12,5 참조)

 

경주김씨 가문의 김차희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경기도 광주의 구산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안 친척들과 함께 남한산성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감옥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굳센 신앙으로 이를 견뎌 냈습니다.

 

옥에 갇힌 그는 옥리의 아들이 급환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말을 듣고, 그 아들을 능숙한 침술로 치료하여 생명을 구해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심한 곤장을 맞고 몹시 신음하고 있는 차희에게 그 옥리가 찾아옵니다. “김생원! 사또 앞에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한 말씀만 하시면 곧 풀려나실텐데 그렇게 하시고 풀려나신 다음 다시 믿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은근히 권하였습니다.

 

이런 순간에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저는 믿음이 약하고 매우 약삭빠른 인간이므로 당연히 속물근성을 발휘해서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하느님께도 인정 받으려는 그 길을 택했을 것입니다. “정말 이 얼마나 기묘한 방법인가? 우선 배교한다고 거짓말 해놓고 풀려나와서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열심히 회개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제가 생각해도 이 방법은 너무나도 기막힌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차희는 그러한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혀를 차고 차희의 자존심을 거들먹거리며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희의 용감한 선택에 대해 더욱 험난한 유혹과 시련의 순간이 닥쳐와서 그의 믿음이 정말 순수한 것인지 그 순도(純度)를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또는 모든 죄인들을 끌어내어 최후로 “천주를 믿겠느냐? 안 믿겠느냐?” 다짐을 받아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차희의 차례가 왔습니다.

 

“너 천주교 믿겠느냐? 안 믿겠느냐?” 하고 관장의 엄숙한 소리가 우뢰같이 들려왔습니다.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콩쾅콩쾅 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바로 뒤에서 “안 믿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죽음의 대열에서 벗어났습니다.

 

“휴유 이젠 살았구나!” 저 같으면 정말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멋진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지도 모릅니니다. 왜냐하면 내 입으로 결코 배교를 하지 않았고 또 그러면서도 죽음에서는 피하여 살길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차희는 용감하게 외쳤습니다.

 

“그건 내가 대답한 말이 아니오. 난 죽어도 천주교를 믿겠소.”

 

차희는 그의 목숨을 구해주려는 옥리가 대신했던 대답을 용감하게 부인하고 자기 발로 걸어서 형장으로 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꼭 죽어야만 했을 이유가 있었던가?”

 

잠시 생각해 봅니다.

 

오늘 독서의 마카베오 하권에서 엘르아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당장에는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도리는 없을 것입니다.”(마카베오 하 6,26)

 

이렇게 하여 유대의 율법학자 엘르아잘과 조선교회의 순교자이자 구산의 용감한 젊은이 김차희는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 동포들에게 친척들에게 이웃들에게 참된 용기와 덕행의 모범을 남기고 죽어갔습니다.

 

그 결과 마카베오서의 유대 동포들과 조선시대 구산의 신자들은 모두 용기를 갖고 참 임금이요, 참 부모이시며, 위대한 임금이시요, 위대한 부모〈大君大父〉이신 하느님을 증거하면서 불같이 끌어오르는 박해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증거하며 오늘날까지도 자랑스런 사람들로 자랑스런 주님의 자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김차희의 큰 아버지 김성우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살아서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겠다.”(生死問 天主敎人)

 

[상교우서(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2003 창간호 통권 1호, 원재연 하상바오로(본 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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