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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톨로메이(8.20)

베르나르도 톨로메이(8.2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Bernard Tolomei)
축일 8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설립자, 수도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272-1348년
같은이름 똘로메오, 똘로메우스, 똘로메이,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톨로메오, 톨로메우스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화려한 시에나, 황무지 아꼬나: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성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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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4 조회수25 추천수0

[미카엘의 순례일기] (64) 화려한 시에나, 황무지 아꼬나 (상)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성인을 아십니까

 

 

-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중세 시대 유명한 성지순례 길인 '비아 프란치제나'가 포함된 시에나였다. 사진은 시에나에 자리한 두오모 성당 전경.

 

 

순례자의 기도문 중에는 “성서 안에서, 전례 안에서, 가르침 안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이제 성지에서 새롭게 뵙고자 하오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순례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만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성인들의 삶도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지중해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에서 출발해서 아시아의 동쪽 끝인 일본까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전교의 주보 성인으로 추앙받으시지요. 하지만 그분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활동적인 선교사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진지한 수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하비에르 성인과 함께 인도네시아 암보니아 진주 해변에서 활동했던 예수회원 만실랴스의 증언입니다.

 

“그분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극심한 고통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와 침묵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이 낮 동안에 발휘하는 모든 힘이 사실 그 전날 밤을 지새우며 보낸 기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오직 그분과 함께 살아 본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성인들도, 실제로 겉으로 알려진 모습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경우가 많습니다. 성 베르나르도 톨로메이(Bernard Tolomei, 1272~1348)도 그중 하나입니다. 톨로메이 성인을 소개하려면 잠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위치한 토스카나는 아름다운 자연, 맛있는 와인, 역사적인 예술작품이 있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수많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입니다. 피렌체를 비롯해 피사, 루카, 베르실리아, 마렘마, 키안티, 카스틸리오네 델라 페스카이아, 발도르차, 100개의 탑이 있다는 산지니냐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모두 토스카나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르네상스 이전까지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피렌체가 아니라 시에나였습니다. 영국의 켄터베리에서 프랑스, 알프스, 바티칸까지 이어지는 중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성지순례 길인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에나는 로마와 유럽 전역을 잇는 상업과 순례의 요충지로 성장했고, 최초의 현대적인 금융업이 시작된 것도 이곳입니다. 당시 환전상들은 ‘돌의자’ 혹은 ‘책상’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반코(banco)’에 앉아 활동했는데, 이후 이것이 은행을 뜻하는 영단어 ‘뱅크(bank)’가 되었을 정도이지요. 1472년 창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반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 BMPS)’도 시에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3세기에 봉헌된 주교좌 성당, 도미니코 대성당, 가타리나 생가성당,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프란치스코 성당 등등 유명한 성지와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을 비롯한 많은 관광지가 있으며, 성녀 가타리나, 성 베르나르디노, 성 톨로메이 등 유명한 성인 성녀를 많이 배출해서 ‘성인들의 도시’라고도 불립니다.

 

시에나를 순례할 때마다 제가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아꼬나 골짜기입니다. 시에나 최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법학 교수이며 황제의 기사로 화려하게 살아가던 요한이라는 사람이 41세가 되던 해에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침묵과 기도의 삶을 시작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본래 요한의 가족이 소유한 도시 외곽에 있는 쓸모없는 골짜기였습니다. 십자가와 몇 권의 책, 최소한의 살림 도구만을 들고 아꼬나에 자리 잡은 세 사람은 동굴을 파서 거처를 만들고, 이불 대신 지푸라기를 덮었으며 나무 둥지를 베게 삼았습니다. 이 동굴은 아직까지도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요한은 시토회를 부흥시킨 베르나르도 성인을 존경하여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삼았습니다. 이 분이 바로 성 베르나르도 톨로메이입니다.

 

나즈막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아꼬나 골짜기 안에는 이제 단아한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9년에 700주년을 맞은 ‘베네딕도회 몬떼 올리베또의 성 마리아 연합회(Congregatio Benedictina S. Mariae Montis Oliveti)의 모원인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Abbazia di Monte Oliveto Maggiore)입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대한민국, 이스라엘, 브라질, 미국, 과테말라 등지에서 25개의 남자 수도원과 19개의 여자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는 이 연합회의 기원이 바로 톨로메이 성인입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수도원을 창설했을 만큼 성실한 수도의 길을 걸었던 성인이지만,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용하고 고독한 수도자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4월 24일,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미카엘의 순례일기] (65) 화려한 시에나, 황무지 아꼬나 (하)


위대한 관상가 성인이 동굴에서 나온 이유는

 

 

-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은 13세기부터 150년에 걸쳐 수도자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 수도원 성당을 봉헌했다. 사진은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 전경과 수도원 회랑을 걷는 수도자들.

 

 

시에나에서 아꼬나로 가는 길은 토스카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 아래 쉼 없이 이어지는 나지막한 언덕마다 푸르름이 가득하고, 대자연 속에 녹아든 고즈넉한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도로 위에서 목자와 함께 풀밭으로 향하는 양 떼를 만나도 절대 경적을 울려서는 안 됩니다. 양 떼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면서 스스로 길을 터주길 기다릴 뿐이지요. 하늘과 밀밭, 양 떼와 올리브 나무가 어우러진 그 길을 가다 보면 화려한 시에나를 아쉬워하던 순례자의 마음도 금세 평화로 가득 차게 됩니다. 물론 베르나르도 가문이 소유하던 시절 700년 전의 아꼬나는 높은 절벽에 둘러싸여 개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 지금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수도원을 향했던 이들은, 살아생전 이 길을 다시 내려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었을 테지요. 그렇게 도착한 수도원의 입구에는 세상과 수도원의 경계를 이루는 작은 해자가 있습니다. 이 해자를 건너면 앞뒤로 성모자상과 베네딕토 성인상이 세워진 아치형 성문을 지나게 됩니다. 문 옆 수도원 입구의 건물에는 작은 레스토랑 겸 카페가 마련되어 있는데, 과거처럼 수백 명의 수도자가 살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성인의 뒤를 잇는 30여 명의 수도자가 수덕생활을 하고 계시기에 순례자는 이곳에서 따로 식사합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절밥이 유명한 것처럼 올리베토 수도원의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맛을 자랑합니다.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의 규모는 상당합니다. 거대한 저수조만 봐도 한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여 살았었는지 느낄 수 있지요. 저수조를 지나면 톨로메이 성인의 성상과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거대한 성당, 수도원 그리고 순례자 숙소가 있습니다. 13세기에 150년에 걸쳐 수도자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 봉헌한 성당과 수도원 내부의 주 회랑(Primo chiostro)의 벽화는 수도원의 자랑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일생을 그린 이 벽화는 3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 한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소도마(Il sodoma)와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의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지요. 물론 이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성당 앞, 정원 끝에 위치한 톨로메이 성인의 동굴입니다. 복자 암브로시오 피콜로미니, 복자 파트리치오 파트리치와 함께 41세 때에 은수 생활을 시작한 장소인 이곳은 700여 년 전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친 땅을 파서 만든 동굴 안에서 지푸라기를 덮고 나무 베개를 베고 살았던 성인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톨로메이 성인의 최후는 이렇듯 세상과 동떨어진 수도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여느 수도자의 조용하고 단출한 죽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인께서 75세가 되시던 해, 이탈리아 전역에 페스트가 창궐합니다. 시에나는 시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여 길바닥에 시체가 가득할 정도로 황폐해졌지요. 그때 톨로메이 성인께서는 80명의 수도자를 이끌고 아꼬나를 떠나 시에나로 오셨습니다. 시에나에서 활동하던 형제 수사들과 다른 시민들을 돌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장례 미사를 주례해야 할 사제들마저 도망친 버려진 도시에서, 성인과 80명의 형제는 끝까지 남아 병자들을 돌보다가 결국 모두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수도자는 사랑을 성장시켜야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침묵과 절제된 삶을 통해 수도자가 찾는 것은 하느님을 닮은 사랑입니다. 그러니 기도에 전념할수록 하느님의 마음처럼 세상의 어려움에 더 아파하게 될 것이고,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초세기 수도자가 남긴 기록처럼, “관상가는, 필요할 때, 적극적인 사랑에 침묵을 양보”해야 합니다. 이 모든 원칙과 질서를 보여주신 분이 바로 똘로메이 성인이십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셨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또 다른 모습이 기도하는 수도자였다면, 침묵하는 관상가로 살았던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성인은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가로 그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몬테 올리베토 대 수도원의 그 ‘작은 동굴’, 그리고 톨로메이 성인의 삶과 죽음은 21세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5월 1일,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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