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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베드로(오매트르 베드로)(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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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오 베드로(오매트르 베드로) (吳 Peter(Aumaitre Peter))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37-1866년
같은이름 베드루스, 오 베드로, 오매뜨르, 오메뜨르, 오메트르, 오베드로, 페드로, 페트로, 페트루스, 피에르, 피터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순교자 성월 특집4: 오메트르 신부와 음식(술),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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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22 조회수42 추천수0

순교자 성월 특집 (4) 오메트르 신부와 음식(술), 순교

 

 

브르트니에르(Bretenieres) 신부는 “조선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해야 할 일이 많으나 선교사 숫자가 너무 부족합니다. 선교사들은 지친 나머지 걸어 다닐 때 힘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 원인은 음식이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과로 때문입니다. 성사 집행은 주로 밤에 해야 하기에 육체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고 더 피곤합니다.”라고 하였다. 페롱(Feron) 신부는 “조선에 있는 선교사들에 비하면(엄률 시토회로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을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은 정말 호사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는 용감한 선교사로서, 트라피스트회의 식단보다 더 극단적인 이 식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머지않아 익숙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베르뇌(Berneux) 주교는 “밥 한 공기에 서너 달 소금에 절여놓은 무 그리고 고추, 거의 이 정도가 제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며 다른 선교사들의 식단이기도 합니다. 습관이라는 것과 무엇보다 소명의 은총은 다른 이들에게 몹시 괴롭게 보이는 것도 쉽게 잠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라고 하였다.

 

오메트르 신부는 “처음 며칠은 조선 음식 맛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다네. 나는 밥은 아주 맛이 좋다고 생각하네. 밥은 조선의 기본 양식이야... 거의 드물지만 고기가 있고, 계란, 과일이 있는데 과일은 거의 항상 익기 전에 따.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은 야채가 있지... 술이 등장하지. 그러면 거에다 물을 2/3 혹은 3/4 비율로 섞는데, 나는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특히 디저트로 밤을 먹을 때 말이야. 그래도 만일 내가 물을 약간 덜 넣어서 마시려고 한다면 내 위는 하루 종일 지치게 될 건 확실해. ‘도대체 이 술은 특별한 뭐가 있는 걸까?’라고 혹시 내게 묻지 않을래? 조선의 포도는 보르도(Bordeaux)의 포도와 품질이 다르지 않나? 그럼, 완전히 다르지. 이곳에서 술을 만드는 포도는 포도나무에서 온 것이 아니야. 이 독한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들어 봐. 부인 하나가 겨를 반죽해 놓는 거야. 며칠 후에 부풀어 오르고 시어지고 몇몇 다른 성분들과 섞인 이 반죽이 맑은 물속에서 용해되는 거야. 이 모든 것이 함께 발효되고 조금씩 ‘막걸리’라고 불리는 탁한 술로 되는 거야. 더 맑은 술을 얻으려면 거기서 찌꺼기를 걸러내지. 그러면 프랑스의 백포도주와 아주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더 노르스름한 술이 되는데 이것을 ‘약주’라고 부르지. 내가 마시는 술이 바로 이거야. 이건 아주 독해서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취할 수 있게 되지. 이 술은 증류시킬 수 있어. 그렇게 한 증류주는 독하고 아주 해로워. 그 이름은 ‘소주’야.”라고 하였다.

 

병인박해에 자수한 그는 체포되었고, 서울에서 문초를 받았다. 이때 목격 증인은 “우리는 그분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통을 당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시고, 또 당신의 기쁨을 성가로 표현하는 것에 만족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오메트르 신부는 최후 진술에서 “형벌을 받으면 좋고 또 좋습니다. 이번에 모질고 잔인한 형벌을 달게 받고 또 달게 받으면 당연히 뒤 세상에서 덕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1866년 3월 30일(성금요일) 보령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장주기, 황석두 등과 함께 순교하였다. 그는 사제가 된 지 4년 만에, 조선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29살의 나이에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순교한 것이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 모셔진 묘지를 방문하면서, 아들의 순교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첫 번째 스쳐간 마음의 동요 다음에는 분명히 그리스도적인 긍지가 지배적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2024년 9월 22일(나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원주주보 들빛 5면,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단양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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