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금주의 성인: 성녀 리지외의 데레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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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4-10-01 | 조회수38 | 추천수0 | |
[금주의 성인] 성녀 리지외의 데레사 (10월 1일)
1873~1897년, 프랑스 출생 및 선종, 교회학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는 시계를 만들던 루이 마르탱 성인과 마리아 젤리 게랭 마르탱 성녀 사이에서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소화(小花) 데레사’ 또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사’로 많이 불리는 데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수와즈 테레즈 마르탱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리지외로 가 살았습니다.
데레사는 10살 무렵 자신을 돌봐주던 둘째 언니마저 첫째 언니가 있는 리지외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자 그 상실감으로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특별했던 데레사는 성모님 발현을 체험한 뒤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데레사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데레사는 15살 때 언니들이 있는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해 1897년 24살의 젊은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9년 반 동안 평범한 수도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893년 2월 20일에는 수련장 보조자로 발령받아 4년 동안 소임을 수행했는데, 이 시기에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 걸어야하는 길로,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데레사는 1896년 4월 결핵 증세가 나타나면서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해 7월 병실로 옮겨 생활할 때까지 데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를 충실히 지켜나갔습니다. 병실에서 마지막까지 고통을 겪으면서도 데레사는 자서전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작은 길’을 모든 이에게 알리는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1897년 8월 9일 마지막 성체를 모신 데레사는 9월 30일 저녁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란 말을 남기고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가르멜 수녀회는 관습대로 데레사가 선종하고 1년이 지나 그의 자서전을 비공식 출판해 여러 가르멜 수녀원으로 보냈고, 자서전을 읽고 감동한 수녀와 신자들의 요구에 따라 공식 출판하게 됩니다. 해가 갈수록 데레사의 글은 큰 관심을 받았고, 불과 10여 년 만에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수백만 권 넘게 보급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비오 11세 교황은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고 불렀습니다.
시복과 시성을 위해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했던 당시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은 데레사가 선종한 지 26년 만인 1923년 4월 29일 시복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어 1925년 5월 17일에는 시성식을 갖고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선포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9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