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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미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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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바오로 미키 (Paul Miki)
축일 2월 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순교자
활동지역 일본(Japan)
활동연도 1564?-1597년
같은이름 미끼,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금주의 성인: 성 바오로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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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06 조회수94 추천수0

[금주의 성인] 성 바오로 미키 (2월 6일)

 

 

1564?~1597년, 일본 도쿠시마 출생 및 나가사키 선종, 일본 최초의 순교자

 

바오로 미키 성인은 일본 도쿠시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고, 20살 무렵에 아즈치야마의 예수회 소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년 뒤인 1585년에는 졸업과 동시에 예수회에 입회해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1588년 아버지가 전사하는 슬픔을 겪었지만, 바오로는 수사로서 첫 서원을 발하고 타고난 성품과 열정으로 전교 활동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바오로는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오르간티노 신부의 눈에 띄어 게이한 지방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사제품을 받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교리교사이자 설교자였던 바오로는 불교 승려들과 자주 토론을 벌였고, 자신이 저술한 교리서들을 통해 많은 불교 신자를 깨우치게 했습니다.

 

당시 일본 교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는 등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1590년 예수회의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순찰사가 인도 부왕의 사절 자격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방문한 뒤 제약 속에서 조심스럽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596년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 오늘날 교토 지방인 미야코 일대에서 성당과 수도원, 병원을 건립하는 등 공공연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다 일본 지배층의 반감을 샀습니다. 아울러 그해 여름 필리핀 마닐라를 떠나 멕시코로 가던 에스파냐 선박 산 펠리페호가 태풍에 밀려 일본 해안으로 떠밀려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원들이 일본 관리들과 대화를 하다 에스파냐의 왕권과 정복욕을 자랑하며 일본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선교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그 결과 1596년 12월 게이한 지방에서 활동하던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을 체포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내려졌고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사제서품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596년 12월 9일 오사카에서 체포됐습니다. 이 때 붙잡힌 이들은 26명에 달합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 처형장까지 걸어가야 했던 이들은 2월 5일 나가사키 근교 우라카미라는 교우촌에 도착해 2명의 예수회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바오로는 동료들과 함께 니시자카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창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이때 바오로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뿐만 아니라 순교 직전에도 당당한 얼굴로 군중에게 가톨릭교회 교리를 설명하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길 희망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나는 일본인 예수회 수도자입니다. 나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커다란 은혜입니다. 국왕을 비롯해 나를 사형에 처하게 한 모든 이를 용서합니다. 모든 일본인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나가사키의 골고타’라고 불리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할 수 있어 기뻐했던 바오로와 동료들은 일본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순교한 언덕은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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