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발도 비스콘티(Teobaldo Visconti)는 피아첸차(Piacenz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파리(Paris)와 리에주(Liege)에서 교회법을 공부한 후 리에주에서 부제가 되었다. 그는 1265년 오토보노(Ottobono) 추기경을 수행하여 영국 선교 길에 오른 적도 있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기도 하였다. 1271년 9월 1일, 그는 아직 사제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교황 클레멘스 4세(Clemens IV)의 서거 이후 3년간 계속된 교황좌의 공석 끝에 6명의 추기경 위원회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어 약간의 물의가 일었다. 선출 당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그는 비테르보(Viterbo)에 도착해 1272년 3월 19일 사제품을 받고, 3월 27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또는 그레고리오) 교황으로 축성되었다. 그는 1274년에 제2차 리옹(Lyon) 공의회를 소집해 동방 교회와 로마 간의 화합을 꾀했으나 십자군 출정으로 말미암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공의회에서 다룬 주요 의제 가운데 교황 선거와 관련된 교령이 반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교황의 서거 후 새 교황 선거를 위해 추기경들이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 선거가 끝날 때까지 머물러야만 하는 오늘날 교황 선거 방법의 토대를 제도화했다. 공의회가 끝난 후 그는 스위스의 로잔(Lausanne),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 피렌체(Firenze), 아레초(Arezzo) 등을 방문하다가 열병으로 쓰러져 1276년 1월 10일 아레초에서 선종하여 주교좌성당에 묻혔다. 그는 1713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로마 순교록에 이름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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