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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시아노(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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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칸시아노 (Cantianus)
축일 5월 3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4세기
같은이름 간시아노, 간시아누스, 깐씨아노, 깐씨아누스, 칸시아누스, 칸티아노, 칸티아누스
성인 기본정보

   5~6세기에 알려진 전승에 따르면 성 칸시오(Cantius)와 성 칸티아누스(또는 칸시아노)와 성녀 칸시아닐라(Cantianilla)는 남매 사이로 로마의 귀족 가문인 아니치가(Anicia家)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들은 후견인이자 가정교사인 성 프로토(Protus, 6월 14일)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성 프로토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치고 전수해주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자 그들은 모두 로마를 떠나 피신하기로 했다. 먼저 노예를 해방하고 집과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뒤에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Friuli) 지방의 아퀼레이아(Aquileia)에 있는 자신들의 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아퀼레이아에 도착한 그들은 감옥에 갇힌 성 크리소고노(Chrysogonus, 11월 24일)를 방문하고자 했으나 이미 한 달 전쯤에 순교한 뒤였다.

   그 당시 아퀼레이아에서도 그리스도교를 금지하는 황제의 칙령이 엄격히 시행되고 있었다. 성 칸시오 남매는 성 프로토와 함께 마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성 크리소고노의 무덤이 있는 아쿠애 그라다태(Aquae Gradatae, 오늘날의 산 칸치안 디손초[San Canzian d’Isonzo])로 가다가 체포되었다. 박해자는 이들 젊은 귀족들이 도착하자 이교 신전에서 희생 제사를 바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사형당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기에 모든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들은 참 하느님 외에는 그 누구도 섬길 수 없다고 고백한 후 자기들의 후견인인 성 프로토와 함께 참수형을 선고받아 순교하였다. 그들 남매의 시신은 조일로(Zoilo)라는 수도승에 의해 수습되어 아쿠애 그라다태에 함께 묻혔고, 성 프로토의 시신도 그 근처에 매장되었다. 20세기에 오늘날 산 칸치안 디손초라고 불리는 곳에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 대성당과 세 사람의 유해가 묻힌 무덤이 발견되기도 했다.

   토리노(Torino)의 주교인 성 막시모(Maximus, 6월 25일)가 성 칸시오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작성한 추도문이 전해지고 있고, 유명한 라틴 시인이자 프랑스 푸아티에(Poitiers)의 주교로서 많은 성인의 행적을 장문의 시로 표현한 성 베난시오 포르투나토(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도 그들에 대해 언급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31일 목록에서 성 칸시오와 성 칸시아노와 성 칸시아닐라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 시대에 가정교사인 성 프로토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아퀼레이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31일 목록에서 성 칸시오와 성 칸시아노와 성녀 칸시아닐라가 아퀼레이아에서 박해자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성 프로토 순교자에 대해서는 6월 14일 목록에서 짧게 언급하였다. 성녀 칸시아닐라는 칸시아넬라(Cantianella)로도 불린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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