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벤노는 1066년에 마이센의 주교로 착좌하였으나, 하인리히 4세에게 반기를 든 어느 색슨 귀족과 한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1년 동안이나 투옥되었다. 또 그가 석방된 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독일 성직자단에 의하여 주교직을 박탈당하였다. 이처럼 그는 격동기의 주교로서 많은 고통을 받으며 선교활동에 성공을 거둔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프레데릭 백작의 아들로서 힐데스하임에서 태어나 성 베른와드 주교 밑에서 공부하고, 쾰른(Koln)의 성 안노에 의하여 마이센의 주교로 착좌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한 성격이었고, 성직자들에게 규율 엄수를 강요하였으며, 거룩한 삶의 표본을 보여준 거룩한 주교였다. 그는 또 성무일도에서 성가로 시편을 바치는 전례를 부활시켰고, 교회 예식에 성가를 도입하였다. 그의 시성은 1523년에 있었는데, 이 시성식이 마르틴 루터의 격렬한 성명을 발표케 하였으니, 소위 “마이센에서 일어난 새로운 우상과 묵은 악마를 반대하여”라는 성명이다. 50년 후 이곳은 프로테스탄트 도시가 됨으로써 성 벤노의 유해는 뮌헨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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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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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벤노(6.16)] | 성인 이름에 담긴 뜻: 벤노(Benno) | 주호식 | 2021/08/14 | 129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