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트카(또는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는 1550년 10월 28일 폴란드 중동부 로스트코보(Rostkowo)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 왕국의 의회 의원이자 자크로짐(Zakroczym)의 성주였고, 어머니 또한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부모는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와 그의 형 파벨(Pawel, Paulus)의 교육을 중요시했고, 특히 가톨릭 신앙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사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그는 14살이던 1564년에 형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며 성녀 바르바라회(St. Barbara Sodality)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등 신앙심과 신심 행위에서 주위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학교 기숙사 건물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 생겨 인근의 한 정부 인사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신심 깊은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는 가능한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만남을 피하고 공부와 기도에 전념하며 고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반면 세속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그의 형 파벨은 동생을 이해하기보다는 ‘예수회원’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며 조롱하거나 질투하고 심지어는 괴롭히기까지 했다. 1565년 12월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가 갑자기 고열로 앓아눕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병색이 깊어 회복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 형에게 마지막으로 노자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사제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형은 그의 병이 위중하지 않다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이는 루터교 신자인 집주인이 가톨릭 사제의 방문을 싫어할까 봐 염려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결국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는 죽기 전에 꼭 성체를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성녀 바르바라의 전구를 간절히 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녀 바르바라가 두 천사와 함께 그에게 직접 나타나 성체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어서 예수님을 안은 성모님이 발현해 그가 예수회원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여러 번의 환시를 경험하고 회복된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무렵 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는 예수회에 입회해 예수회원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예수회의 오스트리아 관구장을 만나 입회를 요청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등의 이유로 부모의 허락을 먼저 받아오라는 말과 함께 거절당했다. 그는 부모의 허락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예수회 독일 관구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로 가서 성 베드로 가니시오(Petrus Canisius, 12월 21일) 관구장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 1567년 8월 10일 몰래 학교를 빠져나온 그는 빈 외곽에 이르자 순례자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아우크스부르크로 향했다. 무사히 형의 추적을 따돌린 그는 725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했다. 그리고 성 베드로 가니시오가 딜링엔(Dillingen)에 있다는 말을 듣고 며칠을 더 걸어 그곳에 도착해 입회를 청했다. 성 베드로 가니시오는 그가 비록 17살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착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 입회를 허락했다. 그는 잠시 딜링엔에 머물다가 다른 두 명의 예수회원과 함께 알프스를 넘어 로마에 있는 예수회 수련소로 떠났다. 1567년 10월 25일 로마에 도착한 그는 마침내 예수회의 수련자로 받아들여졌다. 그 뒤로 그는 더욱 엄격한 고행을 실천하며 수련 기간을 보냈다. 그는 미사 중에 자주 탈혼을 경험하는 등 거룩한 삶을 살다가 당시 유행하던 말라리아에 걸려 예수회 수련자로서 단지 10개월 정도 지낸 1568년 8월 14일 노자성체를 모시고 다음 날 새벽, 자신이 예언한 대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수련소 옆 예수회 성당에 묻혔다가, 나중에 로마의 퀴리날레(Quirinale) 언덕에 있는 예수회의 성 안드레아 성당 제대 밑으로 옮겨졌다.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로마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서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교회 전통대로 선종한 날인 8월 15일에 기념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8월 15일에 그를 기념하고 있다. 다만 예수회에서는 그의 축일이 매년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는 관계로 11월 13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천사에게 성체를 받아 모시거나 동정 마리아의 손에서 아기 예수님을 받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된다. 예수회 수련자와 폴란드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그는 폴란드 말로는 스타니스와프 코스트카(Stanislaw Kostka)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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