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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노(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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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안토니노 (Antoninus)
축일 5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대주교
활동지역 피렌체(Firenze)
활동연도 1389-1459년
같은이름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안토니누스, 안토닌, 피에로치
성인 기본정보

   성 안토니누스 피에로치(Antoninus Pierozzi, 또는 안토니노)는 1389년 3월 1일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피렌체에서 유명한 법률가이자 공증인이었던 니콜로 피에로치(Niccolo Pierozzi)와 토마시나(Tomasina)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안토니오(Antonio)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키가 작고 다리가 불편했기에 사람들은 그를 애정 어린 애칭인 안토니노라고 불렀다. 어려서부터 진지한 성격에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강했던 그는 당시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복자 요한 도미니치(Joannes Dominici, 6월 10일)의 설교를 즐겨 들었다. 성 안토니노는 15살이 된 1404년에 도미니코 수도회(Ordo Fratrum Praedicatorum, OP)에 입회를 요청했으나 수도 생활을 하기에 너무 어리고 허약하다가 생각한 복자 요한 도미니치는 그에게 교회법전을 공부하게 하며 입회를 만류하였다. 하지만 1년 만에 법전을 모두 암기하고 돌아오자 복자 요한 도미니치는 주저 없이 그의 입회를 허락하였다.

   성 안토니노는 복자 요한 도미니치가 피렌체 외곽의 피에솔레(Fiesole)에 새 수도원 건립을 시작해 완공하기도 전인 1405년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에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다. 그는 1406년에 서원한 후 이탈리아의 여러 수도원에서 40여 년 동안 수도자로 생활했다. 그는 수도 생활 대부분을 수도원장으로 지냈고 토스카나와 나폴리(Napoli)에서 두 차례나 수도회 관구장을 역임하였다. 1436년에 그는 피렌체로 돌아와 코시모 디 메디치(Cosimo di Medici)의 재정 지원을 받아 산 마르코(San Marco)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유명한 도미니코 수도회의 화가 수사이자 1982년 시복된 복자 요한 안젤리코(Joannes Angelico, 또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2월 18일)가 벽면을 장식하였다. 복자 프라 안젤리코의 화려한 프레스코화는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었고, 이 수도원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산실이 되었다. 성 안토니노는 공적인 직무 외에도 자주 설교하며 저서를 집필하여 당대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성 안토니노는 평소 성직의 영예를 피하고자 노력했는데, 나폴리 지방에서 도미니코 수도회 개혁을 위해 헌신하던 1446년에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IV)가 그를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했으나 시민들은 기쁨과 환호로 그를 맞이했고, 그해 3월 13일 피에솔레 수도원에서 주교 서품식이 거행되었다. 그 뒤로 성 안토니노는 죽는 순간까지 피렌체의 대주교로서 불굴의 정의감과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직무를 수행했다. 그의 뛰어난 지혜와 능력으로 인해 각종 문제 해결을 위해 교황청과 여러 곳으로부터 자주 초빙되어 활약했으나 그의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교구민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언제나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과 모범적인 처세로 큰 존경을 받았다. 또한 정기적으로 교구를 순회하며 강론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448년 끔찍한 역병과 뒤이은 기근, 그리고 1453년에 발생한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많은 교구민이 병들어 죽거나 집을 잃고 굶주릴 때 그는 헌신적인 자선활동을 펼쳤다. 그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였다.

   성 안토니노는 현대 윤리신학의 기초로 평가받는 “윤리 대전”(Summa moralis)을 통해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두었고, 국가가 공동선에 개입해 불행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또한 1459년에 완성한 “연대기”(Summa Chronica)는 설교자와 성직자를 위한 참고서로 기획된 중세 시대의 가장 포괄적 연대기로 평가받고 있다. 13년간 피렌체의 대주교로서 헌신적으로 사목한 성 안토니노는 1459년 5월 2일 피렌체에서 세상을 떠났다. 교황 비오 2세(Pius II)는 그의 장례식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선종 8일 후에 그의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하였다. 그의 시신은 모든 시민의 애도 속에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안토니노는 1523년 5월 31일 교황 하드리아노 6세(Hadrian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는데, 교황은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이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축일은 로마 보편 전례력에 들어간 1683년부터 1969년 전례력 개정 이전까지 5월 10일에 기념해왔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2일 목록에서 성덕과 학식으로 유명한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성 안토니노 주교가 피렌체에서 선종했는데, 그의 축일은 5월 10일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5월 10일 목록에서는 피렌체의 대주교이자 증거자인 성 안토니노를 기념하는데, 그의 천상 탄일은 5월 2일이라고 적었다. 도미니코 수도회에서는 지금도 5월 10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안토니노가 선종한 날인 5월 2일 목록으로 축일을 옮겨서 피렌체의 주교인 성 안토니노가 도미니코 수도회의 개혁에 힘쓴 후 경건한 사목적 돌봄에 헌신하며 성덕과 엄격한 삶 그리고 훌륭한 교리로 빛났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안토니노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복을 입고 주교관(Mitra)을 옆에 둔 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그리고 종종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는 그에게서 전해오는 기적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어느 날 피렌체의 한 주민이 새해에 큰 상을 기대하며 성 안토니노 대주교에게 아름다운 과일 바구니를 선물했다. 성 안토니노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상을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하고 돌려보냈다. 그 주민은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해 불만을 품었고, 이 소식을 들은 성 안토니노는 그를 다시 불러 저울 한쪽에는 과일 바구니를, 다른 한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상을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적힌 종이쪽지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저울은 과일 바구니보다 종이쪽지가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안토니노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11-113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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