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오를레앙(Orleans) 근교에서 태어난 성 아보는 파리(Paris)와 랭스(Reims) 그리고 오를레앙에서 수학한 후, 플뢰리-쉬르-루아르(Fleury-sur-Loire)의 수도원에 정착하였다. 986년경에 그는 영국 헌팅던셔(Huntingdonshire)의 램지(Ramsey) 소재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었으나, 자신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2년 후 플뢰리로 귀향하였다. 그는 한 차례의 격렬한 선거를 통하여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이 선거는 게르베르(Gerbert)의 도움을 받아 진정될 때까지 오랫동안 파문을 일으켰다. 게르베르는 999년에 교황위에 올라 실베스테르 2세(Silvester II)가 되었다. 성 아보는 교황과 프랑스 국왕 사이의 중재자였는데, 주로 여러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중재하였으며, 가스코뉴(Gascogne)의 라 뢸르(La Reole)에서 수도자들의 분쟁을 평정하려다가 살해되었다. 그는 천문학, 수학 그리고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고, 성 에드문두스(Edmundus, 11월 20일)의 전기를 썼으며 교회법전 선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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