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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모(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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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에라스모 (Erasmus)
축일 6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포르미아(Formia)
활동연도 +303년경
같은이름 에라스무스, 엘모
성인 기본정보

   성 에라스무스(또는 에라스모)에 대해 역사적으로 확실히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확실한 내용은 그가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Lazio州)의 라티나(Latina) 인근 포르미아의 주교였다는 사실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 때 순교했고, 그의 유해가 842년에 인근 가에타(Gaeta)로 옮겨졌다는 것뿐이다. 포르미아는 로마(Roma)와 나폴리(Napoli) 사이 지중해 연안에 있는데, 842년 사라센족이 포르미아를 습격해 파괴했을 때 그의 유해를 지키기 위해 가에타로 옮겨 산타 마리아 델 파르코(Santa Maria del Parco) 대성당에 안치하였다. 917년에 보노(Bono) 주교가 그의 유해를 발견한 후 성인 공경이 활발해지면서 가에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대성당 이름에 그의 이름도 추가되었다. 오늘날 대성당의 공식 명칭은 성 에라스모와 성 마르치아노와 성모 승천 대성당(Cattedrale dei Santi Erasmo e Marciano e di Santa Maria Assunta)이다.

   성 에라스모의 이름은 이미 5세기에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 등재되어 6월 2일에 기념해 왔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는 6세기 말에 포르미아의 주교에게 쓴 편지에서 그의 유해가 이미 포르미아에서 공경을 받았다고 썼고,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두 개의 수도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는 흑사병과 같은 무서운 전염병을 겪으면서 그에 대항하기 위해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생겨난 신심인 ‘14명의 구난 성인’(救難 聖人, Holy Helpers) 가운데 한 명이 되었고, 벼락이 옆에 쳐도 계속 설교했다는 전설로 인해 폭풍과 번개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선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폭풍 전후에 뱃전에 밝히는 푸른 등을 네아폴리탄 항해자들은 ‘성 에라스모의 등’이라고 부르며 성인의 보호를 상징한다고 보았는데, 줄여서 ‘성 엘모(Elmo)의 등’이라고도 부른다.

   성 에라스모의 “순교록”은 6세기에 편찬되었는데 순전히 전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 에라스모는 시리아 안티오키아(Antiochia, 오늘날 튀르키예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의 주교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자 레바논 산속의 동굴로 피신하여 7년 동안 은수자로 살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까마귀가 가져다준 음식만으로 살았고, 천사의 명령에 따라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체포되어 황제의 재판소로 끌려가 우상 숭배를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2일 목록에서 그가 납이 든 채찍으로 채찍질을 당한 후 곤봉으로 매를 맞고 송진과 유황과 기름을 몸에 뿌리고 불을 붙였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고 적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러고 나서 그를 감옥에 가두고 굶어 죽으라고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난 그는 배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고, 중간에 거센 폭풍을 만나 옆에 번개가 치는데도 두려움 없이 설교를 계속했으며 그의 기도로 폭풍이 멈췄다고 한다.

   천사의 인도로 로마제국의 속주인 일리리쿰(Illiricum)에 도착한 성 에라스모는 다시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고, 재차 체포되어 시르미움(Syrmium, 오늘날의 세르비아 북부 사바강[Sava R.] 유역의 스렘스카 미트로비차[Sremska Mitrovica])으로 압송되어 더 심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양묘기(揚錨機, windlass)에 감는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성 에라스모는 다시 한번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나 이탈리아의 포르미아로 갔고, 그곳에서 고문의 상처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이러한 전설을 반영해 그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난 후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재위) 치하에서 몰라(Mola)에서 다시 여러 가지 끔찍한 고문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능력으로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았고, 나중에 평화롭게 거룩한 삶을 마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유해가 가에타로 옮겨졌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2일 목록에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에 기초하여 오늘날 라치오 지방에 있는 포르미아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에라스모의 이름만 간단히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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