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부 노섬브리아(Northumbria) 출신으로 신부가 된 성 에발두스(Ewaldus, 또는 에발도)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으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보통 형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교회 학자인 성 베다 존자(Beda Venerabilis, 5월 25일)는 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에 따라 ‘검은 에발도’(Ewald the Black)와 ‘하얀 에발도’(Ewald the White)라는 별명으로 구분해야 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서로 닮았다고 했다.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교육을 받은 후 사제가 되었는데, 검은 에발도가 성경이나 학식에 있어서 더 박식했지만 둘 다 거룩한 삶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690년경 성 빌리브로르도(Willibrord, 11월 7일)가 네덜란드와 독일 북서부 해안지역에 사는 게르만족인 프리지아인(Frisians)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로 파견될 때 그와 함께 출발한 11명의 동료 선교단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성 빌리브로르도가 먼저 출발한 후 영국을 떠났다고 한다. 성 빌리브로르도는 695년에 그들을 독일 북부 고대 색슨족(Saxons)의 땅으로 오늘날 베스트팔렌(Westfalen)의 일부인 뮌스터(Munster), 오스나브뤼크(Osnabruck), 파더보른(Paderborn) 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로 파견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어느 색슨족 백작 또는 영주(Ealdormen)의 집사 집에 거주지를 정했다. 성 베다에 따르면 당시 고대 색슨족은 왕은 없으나 여러 영주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전쟁 중에는 제비를 뽑아 지도자를 세우지만 평소에는 서로 동등했다고 한다. 성 에발도 형제는 그해 10월 3일 도르트문트(Dortmund)의 아플레르베크(Aplerbeck) 지역에서 일단의 이교도들에 의해 살해되어 라인강(Rhein R.)에 버려졌다. 그들을 해친 이교도들은 두 명의 성 에발도 신부가 그 지방 지도자들과 친분을 돈독히 한 뒤에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이교도의 의식을 폐지하거나 신전을 파괴할까 봐 두려워 살해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영주는 살인자들을 사형에 처하였다. 성 에발도 형제의 시신은 동료 수도자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순교자로서 매장되어 큰 공경을 받았다. 전승에 의하면 떠내려가는 그들의 시신 위로 하늘에서 땅까지 뻗은 불빛이 나타나 그들을 비추었고, 살인자들도 그 불빛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뒤로 그 지역에서는 매년 두 순교자를 기념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그들의 유해는 프랑크 왕국 카를 마르텔(Karl Martell)의 아버지인 헤르스탈의 페핀(Pepin of Herstal, 687~714년 재위)에 의해 쾰른(Koln)의 성 쿠니베르토(Cunibertus) 성당으로 옮겨 안치하였다. 베스트팔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 두 명의 성 에발도 순교자들은 754년 독일의 사도인 성 보니파시오(Bonifatius, 6월 5일) 주교가 순교할 때까지 이 지역에서 순교한 마지막 선교사들이었다. 성 에발도는 성 헤발두스(Hewaldus, 또는 헤발도), 성 에발트(Ewald), 성 헤발트(Hewald)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3일 목록에서 고대 색슨족이 살던 베스트팔렌에 성 에발도라는 이름의 두 순교자가 사제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다가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했고, 밤에 그들의 시신 위로 오랫동안 큰 빛이 나타나 그들이 어디 있는지, 그들의 공로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독일의 작센(Sachsen) 지역에 ‘검은’ 성 에발도와 ‘하얀’ 성 에발도라는 두 명의 순교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영국 출신의 사제로서 성 빌리브로르도와 그의 동료들의 모범을 따라 선교 훈련을 받고 작센으로 건너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가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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