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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스타키오(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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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에우스타키오 (Eustachius)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에우스타치오, 에우스타치우스, 에우스타키우스, 유스타스, 유스터스
성인 기본정보

   전설적인 순교록과 그 내용을 반영한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의 “황금 전설”(Legenda Aurea)에 따르면, 성 에우스타키우스(또는 에우스타키오)는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재위) 치하에서 플라키두스(Placidus)라는 이름을 가진 로마 군대의 사령관이었다. 그는 비록 이교도였지만 아내와 함께 자선을 베푸는 데 힘썼고 두 아들 역시 훌륭한 교육과 보살핌을 받았다. 어느 날 성 에우스타키오는 사냥하던 중에 신비한 체험을 했다. 사슴 떼를 쫓던 중 유난히 아름다운 수사슴을 보고 뒤쫓아 갔다.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서 멈춘 수사슴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할 때 수사슴의 뿔 사이에서 태양보다 밝게 빛나는 십자가를 보았다. 그 십자가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선명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수사슴의 입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알지 못하면서 흠숭하던 그리스도이다. …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 나는 빛이 떠오르고 어둠에서 분리되게 만들었다. …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나는 육신을 취하였고 땅에 나타났다. 나는 십자가에 박혀 묻혔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였다.”

   성 에우스타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로마의 주교를 찾아가 세례를 청했다. 그는 성 에우스타키오로, 아내는 성녀 테오피스테스(Theopistes)로, 두 아들은 성 아가피토(Agapitus)와 성 테오피스토(Theopist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성 에우스타키오는 주님을 만났던 곳으로 다시 갔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믿음에 대한 칭찬을 받고 앞으로 승리의 월계관을 얻기까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구약성경의 욥(Job)처럼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라는 당부도 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며칠 뒤에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집에서 일하던 이들이 모두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축들도 모두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도적들이 들어와 모든 재물을 훔쳐 갔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들과 함께 밤에 이집트로 떠나기로 했다. 배를 타고 출발했는데 뱃삯이 부족한 것을 안 선장은 그의 아내를 탐해 배에 붙잡아두려 했다. 성 에우스타키오는 끝까지 저항했으나 바다에 던져버리려 해서 두 아들과 함께 내릴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과 함께 강을 건너야 할 때 강물이 세차 아들을 하나씩 안고 건너야 했다. 먼저 한 명을 강 건너편에 내려놓은 후 다시 돌아가는데, 늑대와 사자가 나타나서 강가에 있던 두 아들을 잡아갔다. 강 한가운데 있던 성 에우스타키오가 슬픔에 울부짖을 때 목자와 사냥꾼들이 나타나 늑대와 사자를 뒤쫓아 가서 두 아들을 구한 후 마을로 데려가 돌봐주었다. 두 아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우연히 같은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좌절한 성 에우스타키오는 하느님께 시련을 멈추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 도착해 15년을 들판에서 일하며 지냈다. 그즈음 황제와 로마 시민들은 적들로부터 계속 괴롭힘을 당하자 용맹한 장군이었던 플라키두스를 그리워했다. 황제는 군인들을 세상 곳곳으로 보내 그를 찾으라고 했다. 어느 날 그의 밑에서 복무했던 두 군인이 들판에서 일하던 그를 알아보고 그를 로마로 모셔갔다.

   로마에 도착한 그는 황제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군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적과 대적하기 위해 병사들을 보충해야 했는데, 마침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성장한 두 아들도 입대했다. 적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성 에우스타키오는 병사들에게 3일의 휴식을 주었고, 두 젊은이는 한 여관에서 쉬게 되었다. 그들은 우연히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들이 형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관 주인은 그들이 바로 자기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 에우스타키오는 아내와 두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쟁의 승리와 함께 다시 찾은 가족을 데리고 로마로 돌아왔을 때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미 죽고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재위)가 통치하고 있었다. 새 황제는 사령관을 위한 환영 연회를 열고 그의 승리와 가족을 되찾은 것을 축하했다. 다음날 황제는 승리에 대한 감사로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봉헌하도록 했으나 성 에우스타키오는 자신은 그리스도인으로 오직 하느님께만 제물을 바친다며 거부하였다. 분노한 황제는 성 에우스타키오와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원형 경기장에 눕히고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놓았다. 하지만 사자들이 그들 앞에 온순히 머리 숙이고 물러가자 황제는 그들을 황소 모양의 불타는 청동 가마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가족 모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 에우스타키오와 그 가족은 서방교회뿐만 아니라 동방교회에서도 예로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0일 목록에서 성 에우스타키오와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이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짐승에게 던져지는 형을 받았으나 하느님의 도움으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자 놋쇠로 만든 불타는 황소 안에 갇혀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성 에우스타키오는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생겨난 신심인 ‘14명의 구난 성인’(救難 聖人, Holy Helpers) 가운데 한 명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전설적 생애에서 드러났듯이 전염병과 전쟁의 고통뿐만 아니라 큰 환난과 역경 중에 도움을 청하는 성인으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성 에우스타키오와 그 가족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고, 전설적 순교록의 내용 또한 상당히 교훈적이며, 십자가 달린 사슴을 만난 이야기 또한 리에주(Liege)의 성 후베르토(Hubertus, 11월 3일) 주교의 전설과 유사해 그들을 허구의 인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전승에 따르면 로마의 성 에우스타키오의 집 위에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고대 성당이 있고, 그 제단 아래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결국 성 에우스타키오의 순교 사실에 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훈적인 허구의 내용을 첨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20일 성 에우스타키오의 기념일은 1969년 전례력 개정과 함께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삭제되었다. 그리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0일 목록에서 로마에서 고대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부제 추기경 명의 성당(Sant’Eustachio)에서 성 에우스타키오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기록하고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에우스타키오', 서울(일파소), 2023년, 913-920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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