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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울로지오(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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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에울로지오 (Eulogius)
축일 3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코르도바(Cordoba)
활동연도 +859년
같은이름 에울로기오, 에울로기우스, 에울로지우스
성인 기본정보

   성 에울로기우스(또는 에울로지오)는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의 코르도바를 무어인들의 통치할 때 그곳의 이름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코르도바는 7세기에 에스파냐를 정복한 아프리카 무슬림인 무어인들의 수도였다. 그는 로마 시대부터 근처에 땅을 소유한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당시 당국에 추가로 세금을 내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켰다.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성 에울로지오는 성 조일로(San Zoilo) 대성당 학교에서 사제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후 당대 저명한 작가였던 스페라인데오(Speraindeo) 수도원장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높은 학덕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성경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서 코르도바 외곽의 여러 수도원에 자주 들러 밤새도록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가 방문했던 수도원의 요청으로 나바라(Navarra)와 팜플로나(Pamplona)의 많은 수도원을 위한 규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규칙서를 저술해주기도 했다.

   코르도바의 주교는 성 에울로지오를 성 조일로 대성당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무슬림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박해보다는 추가 세금을 내면서 조용히 신앙을 지키는 것은 허용했다. 대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거나 개종을 권유하는 선교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였다. 하지만 이런 타협에 굴복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당국의 정책에 반발했고, 이는 산발적인 박해로 이어졌다. 850년부터 코르도바의 무어인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면서 열정적인 사제였던 성 에울로지오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박해받는 신앙인들을 보호하고 공개석상에서 변호하며 순교할 때는 처형장까지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담은 순교록을 썼다. 그는 851년 감옥에서 두 그리스도인 여성인 성녀 플로라(Flora, 11월 24일)와 성녀 마리아(Maria, 11월 24일)를 위해 “순교에 대한 권고”를 썼다. 그 두 여성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매음굴에 노예로 팔겠다는 위협도 받았으나 성 에울로지오의 권고에 힘입어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순교하고 며칠 후 성 에울로지오와 다른 몇몇 수감자들이 영문도 알지 못하고 석방되었다.

   그 뒤로도 무어인들의 박해는 계속되었다. 852년 이후 주교들이 무어인들을 도발하지 말라는 교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공공연히 신앙을 선포하다가 순교하였다. 성 에울로지오는 이후 몇 년 동안 순교한 사람들의 기록을 작성했는데, 이것이 “성인의 기념”(Memoriale Sanctorum)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순교 이야기는 857년에 순교한 성 루데리코(Rudericus, 3월 13일)와 성 살로몬(Salomon, 3월 13일)에 대한 것이었다. 852년에 후기 우마이야(Umayyads) 왕조의 압드 알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 822~852년 재위)가 사망하고 훨씬 더 엄격한 무함마드 1세(Muhammad I, 852~886년 재위)가 즉위하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성 에울로지오는 그런 상황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는데 지칠 줄 몰랐다. 그는 톨레도(Toledo)의 대주교가 선종한 후 858년에 그의 후임자로 임명되었으나 착좌하지는 못했다.

   이런 와중에 성 에울로지오는 이슬람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무어인인 성녀 레오크리시아(Leocritia, 3월 15일)를 도왔는데, 그 당시의 법으로 개종자는 즉시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그녀를 안전하게 피신시켜야만 했다.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는 기회에 집에서 탈출한 성녀 레오크리시아를 신자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보호하던 중 발각되어 함께 체포되었다. 성 에울로지오는 신앙 교육을 청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의 의무라며 성녀 레오크리시아를 숨겨준 이유를 당당히 밝힌 후 채찍을 맞고 859년 3월 11일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처형되었다. 그리고 그가 구하고자 했던 성녀 레오크리시아도 4일 후에 순교하여 과달키비르강(Guadalquivir R.)에 던져졌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성 에울로지오의 시신은 코르도바의 성 조일로 대성당에 그리고 성녀 레오크리시아의 시신은 성 제네시오 대성당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유해는 883년에 함께 에스파냐 북서부의 오비에도(Oviedo)로 옮겨졌고, 14세기 초에 오비에도 대성당의 보물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카마라 산타’(Camara Santa, 거룩한 방)에 모셔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에울로지오는 성 루데리코와 성 살로몬과 함께 ‘코르도바의 순교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무어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역사를 “순교록”을 통해 전해주었고, “호교론”은 통해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역설하였다. 코르도바의 이슬람 문화는 9세기에 절정에 달했으나 1236년 그리스도교 왕인 카스티야(Castilla)의 성 페르디난도 3세(Ferdinandus III, 5월 30일)에 의해 탈환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11일 목록에서 사라센인이 코르도바에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 순교자들과 함께한 성 에울로지오 사제가 있었는데, 그는 신앙을 위해 사라센인과 맞서 싸운 이들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들의 행복을 부러워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지방 코르도바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성 에울로지오 신부가 참수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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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울로지오(3. ...] 성인 이름에 담긴 뜻: 에울로지오(Eulogius) 주호식 2025/07/02 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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