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로마 순교록”은 5월 10일 목록에서 로마(Roma) 외곽 라티나 가도(Via Latina)의 지하 묘지에 묻힌 성 고르디아노(Gordianus)와 성 에피마쿠스(또는 에피마코) 순교자의 축일을 성대히 지낸다고 전해주었다. 성 고르디아노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 때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체포되어 오랫동안 채찍질을 당한 후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그날 밤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라티나 가도의 지하 공동묘지에 안치하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250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한 성 에피마코의 유해가 얼마 전에 이장되어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성 고르디아노와 성 에피마코는 같은 지하 묘지에 나란히 안치되었고, 그런 이유로 4/5세기부터 5월 10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성 고르디아노와 성 에피마코에 대해서는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의 비문에 언급되어 있으므로 그 역사성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생애와 순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같은 이름의 여러 순교자와 종종 혼동되곤 한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 고르디아노는 어린 소년이었음에도 그리스도를 위해 피를 흘려 충분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야누아리우스(Januarius)라는 사제를 재판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감화받아 온 가족과 함께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로 인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참수형을 당한 후 시신마저 개들에게 던져졌으나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고, 다른 그리스도인에 의해 라티나 가도의 지하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10일 목록에서 성 고르디아노 순교자가 성 에피마코의 유해가 모셔져 한동안 공경받았던 로마의 라티나 가도에 있는 지하 묘지에 묻혔다고 하며, 순교 시기를 300년경으로 기록하였다. 성 에피마코도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순교자와 전승이 섞여 있어 분명한 구별이 쉽지 않다. 옛 “로마 순교록”과 개정 “로마 순교록” 모두 12월 12일 목록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 때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와 동료와 함께 오랜 투옥 후 혹독한 고문을 받고 화형을 당해 순교한 성 에피마코에 대해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의 순교자인 성 에피마코의 유해가 1세기 정도 후에 로마 외곽 라티나 가도에 있는 지하 묘지로 이장되어 나중에 안치된 성 고르디아노와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777년에 샤를마뉴(Charlemagne)의 아내인 복녀 힐데가르트(Hildegardis, 4월 30일)가 그들의 유해 일부를 자신이 설립한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켐프텐(Kempten)의 성 베네딕토회 수녀원에 옮겨 모셨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5월 10일과 12월 12일에 기념하는 성 에피마코를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그들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즉, 성 에피마코의 유해가 이장된 것이 아니고 별도의 로마 순교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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