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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니모(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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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예로니모 (Jerome)
축일 9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부, 교회학자, 성서학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45?-420년
같은이름 예로니무스, 제로니모, 제롬, 지롤라모, 히에로니모, 히에로니무스
성인 기본정보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또는 예로니모)는 345년경 달마티아(Dalmatia)와 판노니아(Pannonia), 곧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경계에 있는 스트리돈(Stridon,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두 나라 국경 지대의 어느 곳이거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보산스코 그라호보[Bosansko Grahovo] 근처)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12살 무렵부터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당시 저명한 문법학자인 아엘리우스 도나투스(Aelius Donatus)의 문하생으로 수사학과 고전 라틴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지식은 물론 고대 학자들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연구 업적으로 명성을 날리다가 당시 관습대로 358년에서 364년 사이 어느 날 성인이 되어 세례를 받았는데, 로마의 주교인 교황 리베리오(Liberius)가 세례를 준 듯하다.

   로마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로마 제국 안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기 위해 갈리아 지방을 따라 오늘날 독일의 트리어(Trier)에 도착해 정부 관리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5월 2일) 주교가 유배를 와서 전파한 동방 수도 생활을 접하고 크게 감동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는 370년경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인 아퀼레이아(aquileia)로 돌아와 발레리아누스 주교의 지도하에 같은 뜻을 지닌 몇몇 친구들과 함께 “복된 이들의 단체(성가대)”(Chorus beatorum)라는 곳에서 복음적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374년경에 그는 더욱 철저한 수덕 생활을 실천하고자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 여행으로 인한 열병에 시달리다가 375년 사순 시기에 꾼 꿈속에서 재판관이신 주님을 뵙고 삶의 결정적 전환점, 곧 회심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병에서 회복된 후에 그는 칼키스(Chalcis) 사막으로 들어가 375년부터 2~3년간 은수 생활을 하며 성경 언어 연구 매진하였다.

   성 예로니모는 먼저 그리스어를 익히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어느 랍비로부터 히브리어를 새로 배웠으며, 사막의 은수자인 테베(Thebae, 나일강 중류에 있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Luxor])의 “성 바오로(Paulus) 전기”를 썼다. 사막에서의 은수 생활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과의 만남과 친교를 위해 노력하던 그는 은수자들 사이에 아리우스(Arius) 이단 문제로 대립하는 일이 생겨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379년 봄에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그는 그 도시의 주교인 바울리누스(Paulinus)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그곳의 총대주교인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월 2일)의 강의를 듣고 오리게네스(Origenes)의 성경 주석 방법에 매료되었다. 그러면서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오(1월 10일) 주교와도 교류하였다. 이때 그는 오리게네스(Origenes)의 “강론집”과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연대기” 등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382년에 로마로 돌아온 성 예로니모는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의 비서로 임명되어 교황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았다. 교황은 그에게 신구약 성경 모두를 라틴어로 새로 번역하는 대업을 맡겼다. 서방 교회에 이미 여러 개의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있었지만, 교황은 성 예로니모에게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라틴어 성경본을 다시 만들도록 위촉한 것이었다. 그 당시 그는 헬비디우스(Helvidius)의 이론을 반박하는 “헬비디우스 논박, 복되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하여”(383년)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헬비디우스가 마리아는 예수 외에도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성 예로니모는 성경 번역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영적인 수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의 아벤티노(Aventino)에서 성녀 마르첼라(Marcella, 1월 31일)와 성녀 바울라(Paula, 1월 26일) 등이 주축이 되어 복음적 삶을 따르기 위해 모인 상류층의 미망인들에게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에 전념하는 다락방 모임을 만들고, 수도 생활의 이상에 대한 열정을 고취하였다. 그는 성경 주석가이자 교사이자 영적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그런데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던 성 다마소 1세 교황이 선종하자 그의 재능을 시기한 일부 사람들이 성 예로니모가 여자들의 집을 들락거린다며 의심하고 비난하였고, 그로 인해 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안티오키아로 갔고, 얼마 뒤 영성 생활과 성경 공부를 계속하고자 했던 성녀 바울라와 그녀의 둘째 딸인 성녀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9월 28일) 그리고 로마에서 온 몇몇 동료들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사막의 은수자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그는 위대한 신학자인 맹인 디디무스(Didymus)도 만났다. 그 후 팔레스티나로 간 성 예로니모는 386년 여름부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귀족 출신의 미망인인 성녀 바울라도 성녀 에우스토키움과 함께 베들레헴에 정착해 자신의 재산으로 성 예로니모가 세 개의 남자 수도원과 한 개의 여자 수도원을 세우는 데 경제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리고 성녀 바울라는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성 예로니모는 남자 수도원의 원장을 맡았다. 성 예로니모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도 짓고, 수도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직접 강의를 담당했다.

   그 뒤로 성 예로니모는 선종하는 순간까지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34년 이상 성경 번역 활동에 몰두하며 당시 몇몇 이단적 가르침을 반박하는 글도 발표하였다. 예를 들어 요비아누스(Jovianus)의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부인과 사제의 독신 및 성인들의 유해 공경 반대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하였다. 그러나 성 예로니모의 가장 큰 논쟁은 자신의 옛 친구이자 오리게네스의 지지자이며 성경 번역에도 공로가 있는 아퀼레이아의 루피누스(Rufinus)와의 사건이었다. 본래 오리게네스 신학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성 예로니모는 살라미스(Salamis)의 성 에피파니오(Epiphanius, 5월 12일) 주교와 예루살렘의 요한(Joannes) 주교 사이에 벌어진 오리게네스 신학 논쟁에 휘말렸다. 이때 성 에피파니오를 지지함으로써 요한을 지지했던 루피누스와 등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오리게네스주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또한 394년부터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us) 이단을 몰아내는 데도 힘을 보탰다.

   성 예로니모의 가장 큰 업적은 교황 성 다마소 1세의 명은 받은 때부터 405년 완역할 때까지 계속된 성경의 라틴어 번역이었다. 382년부터 신약성경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칠십인역”(Septuaginta)을 배척하는 유대인 랍비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이 번역했다. 405년까지 계속된 이 엄청난 작업으로 번역된 라틴어 성경에 ‘불가타’(Vulgata, ‘대중적’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성 예로니모 당시가 아니라 13세기경의 일이었다. 그 이유는 성 예로니모의 라틴어 번역 성경이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16세기에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 1545~1563년)에서 이 번역본을 교회의 공식적인 라틴어 성경으로 인정하는 칙령을 반포하였다. 성 예로니모는 “이사야서 주해” 서문에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과 같다.”라고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불가타 성경을 통해서 중세 유럽인들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성찰하는 법을 배웠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를 더 잘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성경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406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그는 수많은 성경 주석서를 남겼고, 자신의 번역 사업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도 남겼다. 415년에 펠라기우스주의자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이듬해인 416년 펠라기우스주의를 신봉하는 폭도들이 베들레헴 수도원으로 쳐들어와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고 성 예로니모와 수도자들을 해치려고 했었다. 성녀 바울라가 선종한 이후 수녀원을 이끌던 성녀 에우스토키움도 폭도들의 약탈 사건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다 419년경 베들레헴에서 눈을 감았고, 420년 9월 30일에 성 예로니모도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주님 탄생 성당에 묻혔다. 그는 라틴 교부들 가운데 가장 박학한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동시대 사람 중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는 서방(라틴)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신학교의 수호성인 또는 수덕 생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서재에 있는 학자나 사막의 은수자(참회자)로 많이 그려진다. 또한 라틴 교회의 4대 교부들과 함께 등장하거나 성경 번역가로서 번역 작업 중인 모습이나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복장에 있어서는 참회자의 모습뿐 아니라 추기경 복장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교회법적으로 추기경 서임을 받은 적은 없지만 중세 후기부터 존경의 표시로 추기경 복장을 한 모습을 많이 표현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30일 목록에서 사제이자 교회학자인 성 예로니모가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모든 학문에서 뛰어났고 존경받는 수도자였으며 전통 교리로 많은 이단을 물리쳤다고 적었다. 그리고 고령에 선종하여 주님께서 탄생하신 구유 근처에 묻혔다가 나중에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교회학자이자 사제인 성 예로니모의 생애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는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에 속한 달마티아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해 로마에서 학업을 마치고 세례를 받은 후 관상 생활의 매력에 빠져 금욕 생활을 하다가 동방으로 가서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로 돌아와서 교황 성 다마소의 비서로 활동하다가 유다의 베들레헴에 정착해 수도 생활을 시작했으며, 성경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데 있어 뛰어난 학자로 살다가 노령이 되어 안식을 누렸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예로니모', 서울(한길사), 2014년, 353-362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74-178쪽.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예로니모', 서울(일파소), 2023년, 840-846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예로니모', 서울(으뜸사랑), 2014년, 55-6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예로니모',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317-6319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예로니모 사제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246-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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