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리아(Odilia), 아딜리아(Adilia), 오딜(Odile) 등의 이름을 가진 성녀 오틸리아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 보주(Vosges) 산맥의 오베르하임(Oberheim)에서 알자스의 공작이었던 아버지 아티크(Attich)와 메로빙거 왕가 출신인 어머니 베레스윈드(Bereswinde)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잔인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데다 딸로 태어난 성녀 오틸리아를 하인들을 시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숨길 수 있었는데,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성녀 오틸리아가 맡겨진 곳은 지금은 프랑스 지역이 된 발마(Balma)에 있던 한 수녀원이었다. 그녀는 비록 앞을 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밝고 착하게 자랐다. 673년경 성녀 오틸리아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성 에르하르두스(Erhardus, 1월 8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주교가 세례 중에 바른 성유가 그녀의 눈에 닿자마자 눈이 열려 시력이 온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화가 풀렸으리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안인 메로빙거 왕조와 싸움을 벌이던 중이라 딸을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성녀 오틸리아의 남동생들을 죽이고 생트 오딜(Sainte-Odile) 산에 딸을 감금시켰다. 680년경 성녀 오틸리아의 아버지는 처가인 메로빙거 왕조를 없애려는 음모가 어느 정도 성공해서 권력을 차지하자 그녀를 풀어 주고, 보주 산꼭대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몽생트오딜(Mont Sainte-Odile) 수녀원을 설립해 원장이 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12세기까지 이 수녀원은 호헨부르크(Hohenburg) 수녀원으로 불렸다. 몇 년 후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 아래 산기슭에 니더뮌스터(Niedermunster) 수녀원을 설립해 원장이 되었다. 두 번째로 설립한 수녀원에는 신자들을 위한 병원도 함께 지었다. 여기서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변화에 기뻐하며 남은 생을 기도와 봉사로 지내다 720년 선종해 몽생트오딜 수녀원에 묻혔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를 넘어 독일까지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미 9세기부터 여러 지역 교회의 성인 호칭 기도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녀가 묻힌 무덤은 신자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그로 인해 14세기까지 성녀 오틸리아의 유해가 유럽 여러 도시에 나뉘어 모셔졌다. 적어도 16세기 이전부터 성녀 오틸리아는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나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져 왔다. 1807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는 공식적으로 성녀 오틸리아를 알자스 지방과 시각장애인 및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그 후 성녀 오틸리아가 살던 몽생트오딜 수녀원의 샘물은 눈병을 치료한다고 여겨지면서, 샤르트르(Chartre)와 루르드(Lourdes) 등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유명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오틸리아는 보통 두 눈이 있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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