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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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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올가 (Olga)
축일 7월 1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대공비
활동지역 키이우(Kyiv)
활동연도 +969년
같은이름 엘레나, 올하, 헬가, 헬레나
성인 기본정보

   성녀 올가는 890년경 러시아 북서부의 프스코프(Pskov)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러시아 키예프(Kiev)의 왕자인 이고르 1세(Igor I)와 결혼하였으나 945년에 남편이 과도한 세금 부과에 반발한 드레블리아인(Drevlians)에 의해 살해되자 세 살배기 아들을 대신해 한동안 섭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그녀는 962년경 아들인 스뱌토슬라프(Svyatoslav)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섭정으로 통치하며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감행했다. 그녀는 당시 관습대로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드레블리아인을 잔혹하게 처형하고, 온갖 종류의 조공과 세금을 부과하였다. 성녀 올가는 동로마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방문했고, 957년경 엘레나/헬레나(Elena/Helen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쇄신하였다.

   성녀 올가는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 선교 활동을 후원하며 백성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개종시키고자 고심하였다. 그래서 오토 1세(Otto I) 황제에게 주교를 파견하여 민족의 복음화와 교계제도를 회복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961년에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성 아달베르토(Adalbertus, 6월 20일) 주교가 파견되었으나 이교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이듬해에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성녀 올가는 평화적으로 백성들의 개종을 이끌고 많은 성당을 건축하는 등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으나 기대한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아들인 스뱌토슬라프의 개종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늦게나마 손자인 성 블라디미르 1세(Vladimir I, 7월 15일)가 988년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러시아 선교에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성녀 올가와 성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의 개종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11세기의 한 연대기 작가로부터 ‘새로운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성녀 올가는 969년 7월 11일 약 8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성 블라디미르 1세가 키예프에 건축한 성모 승천 성당에 그녀의 유해를 이장한 996년 무렵 시작되었다. 불행하게도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가 파괴되면서 성당과 그녀의 유해도 모두 사라졌다. 17세기에 성당은 복원되었으나 그녀의 유물과 관련된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녀 올가는 동방 가톨릭교회 전례력에 포함된 최초의 러시아-슬라브계 성인 중 한 명으로 러시아의 역사에서 이교도 시대와 그리스도교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로 여겨진다. 새천년기를 맞으면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는 “로마 순교록”에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1일 목록에서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속한 키이우(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과거 러시아식으로는 키예프로 불렀다)에서 성 블라디미르의 할머니인 성녀 올가가 류리크(Ryurik) 왕조 최초로 헬레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러시아 국민 전체에게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열었음을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성녀 올가는 성녀 헬가(Helga), 성녀 올하(Olha)로도 불린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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