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로마의 사제로서 교황 세르기우스 2세(Sergius II)를 도와 교황청에서 일했고, 교황 성 레오 4세(Leo IV, 7월 17일)의 차부제, 교황 베네딕투스 3세(Benedictus III)의 고문관을 역임하였다. 그는 858년 4월 17일 전임 교황 베네딕투스 3세가 선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으로 선출되어 즉시 교황좌에 앉았다. 그는 늘 문제시되어 왔던 결혼의 거룩함과 불가해소성을 역설하였고, 로타링기아의 왕 로타리우스 2세(Lotharius II)의 이혼과 재혼을 불법이라 규탄함으로써 수많은 정치 문제에 말려들게 되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와의 오랜 분쟁, 라벤나(Ravenna)의 요한 대주교와의 대립, 랭스(Reims)의 대주교 힝크마르(Hincmar)의 야심 등으로 인해 그의 재임기간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관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므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정의감은 높은 존경을 받게 하였다. 성 니콜라우스는 ‘대’ 교황이란 칭호를 받는 3명의 교황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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