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루카(Lucca) 지방의 디에치모(Diecimo)에서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성 요한 레오나르디(Joannes Leonardi)는 약학을 공부하여 약사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그 후 콜룸바누스회에 입회했으며, 고해사제이던 도미니코회 파올리노 베르나르디노(Paolino Bernardino)의 지도를 받아 인문학과 철학, 신학을 공부하여 1572년 12월 22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성당에 부임하여 어린이와 성인의 교리교육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그는 병원과 감옥의 사목활동에 정열을 쏟아서 수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자 후원자들과 협력자들이 쇄도하였다. 그때 마침 트렌토(Trento) 공의회가 열리고, 프로테스탄트가 기세당당하게 활동하므로 요한과 그의 후원자들은 새로운 교구 사제회의 구성을 계획하여 프로테스탄트와 대항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1574년 9월 1일 ‘복되신 동정녀의 개혁 사제회’를 결성했다. 이 사제회는 1619년 8월 14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라 개칭되어 승인받았다. 이들은 초기에 루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도미니코 회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루카 지방에서 발생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강력한 반격을 가한 요한의 사도적 열정과 개혁은 교황의 도움으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1584년 그는 로마(Roma)에 있는 친구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그의 소개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를 알현하였다. 그와 동료 사제들은 이탈리아에서 프로테스탄트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609년 로마(Rome)에 독감이 퍼지자 요한은 독감에 걸린 14명의 동료 수도자들을 간호하던 중에 감염되어 그 해 10월 9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1861년에 시복되었고, 1938년 4월 17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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