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요한네스 보디(Joannes Bodey, 또는 요한 보디)는 1549년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Somerset)의 웰스(Wells)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햄프셔(Hampshire)의 윈체스터 칼리지(Winchester College)를 나와 옥스퍼드(Oxford)의 뉴 칼리지(New College)에서 수학하여 1568년 연구원이 되었고, 1576년 2월에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해 6월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대학 연구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대학에서도 쫓겨났다. 다음 해에 그는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민법을 공부하고 1578년 2월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는 햄프셔의 한 학교에서 교장 선생으로 활동하다가 1580년 복자 요한 슬레이드(Joannes Slade, 10월 30일)와 함께 체포되어 윈체스터의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그들은 간수 둘과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다. 그들은 가톨릭 신자로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의 통치 중에 교회에 대한 국왕의 수위권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583년 4월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에 대한 선고가 부당하고 불법적이라고 생각해 재심을 청구한 복자 요한 보디는 그해 8월 햄프셔의 앤도버(Andover)에서도 같은 선고를 받았다. 그는 1583년 11월 2일 앤도버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복자 요한 보디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11월 2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요한 보디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2일 목록에서 영국 햄프셔의 앤도버에서 교장으로 활동하던 복자 요한 보디가 영적인 문제에 대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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