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네스(Joannes a Cruce, 또는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42년 6월 24일 에스파냐 중부 아빌라(Avila) 근교의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직조공이었던 아버지 곤살로 데 예페스(Gonzalo de Yepes)와 어머니 카탈리나 알바레스(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개종한 유다인 혈통으로 당시 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하던 때라 그의 조부와 부모 모두 그런 사실을 숨기고 상인으로 열심히 일해 부유한 생활을 누렸었다. 하지만 조부모가 일찍 돌아가면서 그의 가족은 극심한 빈곤과 궁핍 속에서 생활하였고, 아버지와 형 루이스(Luis)는 성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그래서 성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좀 큰 도시인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로 가서 정착했다. 그곳에는 가난한 아이들과 고아들을 위한 교리학교가 있었는데, 성 요한은 교리학교에서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 열심히 공부하며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에서 복사도 섰는데, 그런 그를 눈여겨본 수녀원 지도신부의 배려로 그가 책임자로 있는 메디나 델 캄포의 한 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며 홀어머니를 돕던 그는 병원장 신부의 주선으로 예수회에서 새로 설립한 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얻었다. 1563년 그는 예수회 학교를 졸업하고 메디나 델 캄포에 1560년에 설립된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년간 수련을 받고 이듬해 5월 21일에 성 마티아의 요한(Juan de Santo Matia)이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하고, 지속적인 학업을 위해 메디나 델 캄포를 떠나 학문의 도시인 살라망카(Salamanca)로 갔다. 1564년부터 1568년까지 성 요한은 살라망카 대학에서 철학과 스콜라 신학의 정수를 공부했는데, 학업을 마칠 무렵인 1567년 살라망카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첫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고향과도 같은 메디나 델 캄포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두 번째 개혁 가르멜 수녀회 설립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와 있던 아빌라(Avila)의 성녀 데레사(Teresia, 10월 15일)를 만났다. 그 당시 가르멜회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해 더 고적하고 깊은 기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성 요한이 피력하자, 성녀 데레사는 그를 설득해 가르멜회에 계속 남아 함께 개혁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영성사에서 성 요한과 성녀 데레사의 만남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둘의 만남으로 인해 남자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 탄생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1568년 11월 28일에 성 요한은 아빌라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인 두루엘로(Duruelo)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도움으로 개혁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성 요한은 가르멜회의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하면서 이름 또한 ‘십자가의 요한’으로 바꾸었다. 그는 열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인근 마을들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 뒤 두루엘로에 최초의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 인근의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이어서 1571년에 알칼라(Alcala)라는 대학 도시에 설립된 새로운 학생 수도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알칼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 수사들을 지도했고, 1572년부터 만 5년 동안 아빌라의 강생의 가르멜 수녀회의 원장으로 부임한 성녀 데레사의 부탁으로 150명이나 되는 수녀들의 영적 지도와 미사와 성사를 담당하였다.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노력으로 개혁 가르멜회 수도자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개혁운동에 탄력이 붙자, 1577년 12월 2일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가르멜회 수도자들에 의해 성 요한이 납치되어 톨레도(Toledo) 수도원의 다락방에 감금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이곳에서 1578년 8월까지 약 8개월간 갖은 협박과 회유, 인격 모독을 받으며 ‘어두운 밤’을 체험하였다. 그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신비적 · 영성적 · 문학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그는 몇 편의 시를 썼다. 8개월 정도 지난 성모 승천 대축일 밤에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감옥을 탈출한 그는 톨레도(Toledo)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으로 잠시 피신했다가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개혁 가르멜회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1579년에 십자가의 성 요한은 에스파냐 남부 바에사(Baeza)로 갔다. 맨발의 가르멜회에서 그곳 바에사 대학에 다니는 학생 수사들을 위한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그를 초대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1582년에 그는 그라나다(Granada)에 신설된 로스 마르티레스(Los Martires) 수도원의 원장으로 부임해 약 6년간 활동하며 “영혼의 노래” 해설서 집필을 완료하고 “사랑의 산 불꽃” 해설서도 썼다. 그리고 이전에 톨레도 감옥에서 탈출한 후 갈바리오에서 시작한 “가르멜의 산길”과 “어두운 밤” 해설서도 완성했다. 1588년에는 에스파냐 중부 세고비아(Segovia) 수도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런데 1590년 수도회 부총장 회의가 열렸을 때 십자가의 성 요한과 당시 총장 신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겼다. 그는 가르멜회 수녀들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총장의 조치에 반대했고, 이로 인해 부총장직과 세고비아 수도원장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1591년 6월 오지와 다름없던 멕시코 선교사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고 다리에 염증도 생겨 치료를 위해 에스파냐에 남게 되었다. 그는 모든 형편이 열악한 신설 수도원인 우베다(Ubeda) 수도원으로 가서 병고에 시달리며 부당한 대우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뒤 12월 14일 선종하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톨릭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저서들은 영성 신학의 가장 유명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이 가장 유명하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 학자로, 1993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스파냐 언어권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4일 목록에서 가르멜회 개혁에 있어 성녀 데레사의 동반자였던 십자가의 성 요한이 에스파냐 우베다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며 그의 축일을 11월 24일에 지낸다고 전해주었다. 그가 선종한 날이 당시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무염시태(無染始胎) 대축일(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팔일 축제와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 전례력 개정과 함께 그의 축일이 천상 탄일인 12월 14일로 옮겨졌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12월 14일 목록에서 가르멜회의 사제이자 교회 학자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요청으로 수도회 개혁에 처음으로 동참해 여러 방법으로 개혁을 지지했으며, 그로 인해 혹독한 환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뚫고 하느님의 산에 올라 그리스도 안에 숨어 있는 내면의 삶을 추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의 불꽃으로 자신을 불태우다 에스파냐의 우베다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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