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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타(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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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율리타 (Julitta)
축일 6월 16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타르수스(Tarsus)
활동연도 +4세기초
같은이름 율리따, 율리에따, 율리에타, 율리엣다, 줄리에따, 줄리에타, 줄리엣다, 줄리타, 쥴리타
성인 기본정보

   성 퀴리코(Quiricus)라는 이름의 어린아이 순교자에 관한 이야기가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전해져온다. 유아 순교자인 성 퀴리코의 어머니인 성녀 율리타는 소아시아 지방 이코니움(Iconium, 오늘날 튀르키예의 코니아[Konya])에 살던 저명한 귀부인이자 일찍 과부가 된 그리스도인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 때 고향에서 신앙생활 하기가 너무 위험해 3살 된 어린 아들인 성 퀴리코와 두 명의 하녀만을 데리고 모든 재산을 포기한 채 타르수스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이미 셀레우키아(Seleukeia)의 지방 장관인 알렉산데르가 혹독한 박해를 자행하고 있었다. 성녀 율리타는 로마의 신들에게 제사 바치기를 거부해 체포되었고,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지방 장관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지방 장관 알렉산데르는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성녀 율리타에게 채찍질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어머니가 매 맞는 것을 보고 아기가 비명을 지르자 지방 장관은 다정스러운 말로 달래며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자 성 퀴리코는 오히려 발버둥 치며 총독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고 물어뜯었다. 화가 치민 지방 장관은 판사석 계단 아래로 성 퀴리코를 던졌고, 그로 인해 어린 아기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모진 고문을 받으며 아들 때문에 울부짖던 성녀 율리타는 아들이 자기보다 먼저 순교의 월계관을 쓰고 하늘나라에 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지방 장관은 더욱 분노하여 날카로운 갈고리로 그녀의 옆구리를 후비고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긴 뒤 끓는 역청 속에 넣어 참수하도록 명령했다. 그들의 시신은 다른 범죄자들의 시체와 함께 성벽 밖으로 던져졌다. 성녀 율리타와 함께 왔던 두 하녀가 그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근처 동굴에 묻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박해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그때까지 생존했던 하녀 한 명이 신자들에게 성녀 율리타와 성 퀴리코의 유해가 묻힌 곳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나자 많은 순례자가 왔고, 거룩한 모자(母子)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수도원이 세워지고 유럽의 여러 도시로 그들에 대한 공경이 퍼져나갔다.

   성녀 율리타는 율리에타(Julietta)로도 불리고, 성 퀴리코는 키리쿠스(Cyricus)로도 불리는데, 그들이 순교한 정확한 날은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의 순교 이야기도 여러 형태의 전설이 혼재하여 전해지고 있다. 타르수스에서 어린 아기인 성 퀴리코가 먼저 순교하고 어머니가 참혹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이야기는 중세에 가장 인기 있는 종교 서적인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의 “황금 전설”(Legenda Aurea, Golden Legend)에도 등장한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대체로 7월 15일에 그들의 축일을 기념하는데, 가톨릭교회의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16일 목록에서 소아시아 남동부 킬리키아(Cilicia)의 타르수스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세 살 된 어린 성 퀴리코와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율리타가 순교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소아시아 지방에서 성 퀴리코와 성녀 율리타를 기념한다고 짧게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퀴리코와 그의 어머니 성녀 율리타', 서울(일파소), 2023년, 472-473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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