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이연희 마리아(Maria)는 1839년 5월 24일에 순교한 남명혁의 아내로서 성격이 강직하고 매우 영리하며 부지런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리에도 밝아서 많은 여교우들을 가르쳐 성사를 타당하게 받도록 주선했다. 남편과 함께 주교와 신부들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첨례를 보았으며, 성직자와 신자들이 모여오면 이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는 등 갖은 열성을 보였다. 이러한 그녀의 모범은 많은 교우들의 마음을 끌었고, 그녀의 남편이 회장직을 잘 수행하도로 도와주었다. 기해년 4월 7일 그녀는 남편과 12세 된 아들과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것은 아내가 체포된 데 대한 양심을 품은 어느 예비신자의 밀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마리아는 옥에 갇혀 있을 때 포졸들의 무례한 언동을 준절히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 남 다미아누스(Damianus)로부터 “교우는 천주를 위하여 순량한 양같이 죽어야 하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잃지 마오.” 하는 주의를 듣고부터는 모욕과 학대를 원망하지 않고 참아 받았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모정의 순교였다. 당시 12세의 아들이 다른 감방에 갇혀 있었는데 형리들이 그 아들을 매질한 뒤 잔인하게도 싱글벙글 웃으며 마리아를 찾아와 아들을 매질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가혹한 형벌을 이기지 못하여 혹시 배교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이것은 주님의 가장 크신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아니 하였다고 한다. 어떤 증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 천주를 진실히 사랑하였고, 그 영혼의 원은 오직 천국을 향하여 있었다.” 한다. 그녀는 12살 된 아들을 남겨 놓고 1839년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3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치명하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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