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조윤호 요셉(Josephus)은 조화서 베드로(Petrus)의 아들로 충청도 신창에서 태어났고, 부친을 따라 1864년경부터 전주 성지동으로 이사하였으며,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부인과 함께 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깊은 신심과 세심하리만큼 성실한 수계생활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또 젊은 조 요셉은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과격하고 용감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1866년 12월 4일 포졸들이 아버지 조 베드로를 체포하여 집에서 심문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부친 베드로는 아들에게 멀리 피하라고 당부하자 요셉은 “아버지, 저더러 이제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저도 같이 묶여 가기가 소원입니다. 이제껏 믿어온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아니하게 저도 잡혀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되는 날을 그 얼마나 기다렸는지요.” 하며 아버지와 함께 잡혀 압송되었다. 전라 감사 앞에 불려나간 요셉은 먼저 문초를 받은 아버지가 배교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배교하라는 감사의 말에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실 줄 압니다.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배교할 생각이 없으니 통촉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감사가 성교회의 도리를 가르쳐 준 사람과 서양 책을 어디에다 숨겼느냐고 묻자 그는 “성교 도리를 가르쳐 준 분은 1839년에 치명하신 할아버지이며, 책은 가진 것이 한 권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후 감사는 다시 한 번 이 젊은이를 배교시켜 보려고 시도했으나 허사로 돌아갔다. 포졸들은 사형장으로 향하는 긴 여행 중에서까지 배교하면 잃어버린 재산을 모두 다시 찾아주겠다고 하면서 그를 꾀어보았다. 그러나 “나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당신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말은 그만 두십시오” 하고 거절했다. 1866년 12월 23일 포졸들은 그에게 큰 칼을 씌워 먼 길을 뛰어 사형장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그는 기진맥진하였다. 형장에 도착하자 관리가 사형 선고장을 그 앞에 가져다 놓자 그는 태연하게 서명한 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이에 기가 질려버린 감사가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자, 요셉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음식이라 무척 맛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감사는 바지를 벗기고 엎드리게 하였다. 손을 머리 위로 묶고 양쪽에 서서 곤장을 교대로 치기 시작하였다. 곤장은 수없이 부러져 나갔고 얼마를 쳤는지 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렇게도 빳빳하던 고개가 드디어 푹 숙여졌다. 이를 본 사람들은 요셉이 죽은 줄 알았다. 그러나 요셉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뒤늦게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 포졸은 장터로 모여든 거지 떼를 시켜 밧줄로 목을 매고 양쪽에서 당기니 숨을 거두었다. 조 요셉의 장한 순교로 그의 집은 연 3대의 순교자 가문이 되었다. 때는 1866년 12월 23일이요,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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