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는 300년경 이탈리아의 로마(Roma) 또는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이즈미트[Izmit])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함께 로마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와 함께 교육받은 동료 중에서 율리아누스(Julianus)는 로마 교회의 부제가 되고 그는 독서자가 되었는데, 그 율리아누스는 나중에 악명 높은 그리스도교 박해자인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가 되었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덕행과 기적으로 유명했고, 부모가 신앙 때문에 순교한 후 수도승 성 힐라리노(Hilarinus, 7월 16일)와 함께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레초의 주교에 의해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고 346년 그 주교가 선종한 후 뛰어난 성덕과 학식으로 인해 아레초의 네 번째 주교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1세기 초 아레초에 관한 가장 오래된 주교 명단에 따르면 그는 사티로(Satyrus) 주교에 이어 두 번째 주교였다고 한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가 전해준 증언에 따르면 성찬례가 거행 중일 때 몇몇 이교도가 들어와 성작을 깨뜨렸는데, 성 도나토가 간절히 기도하여 성작을 다시 모아 붙였고 밑바닥에 조각 하나가 없었지만 한 방울의 포도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기적으로 인해 많은 이교도가 개종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우물에 독을 퍼붓던 용이 나타나 공격했으나 성 도나토가 싸워 물리쳤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7일 목록에서 성작의 기적과 함께 아레초에서 순교자이자 주교였던 성 도나토를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콰드라티아누스 장교에게 체포되어 우상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고 칼에 맞아 순교했다고 했다. 또한 성 힐라리노 수도승이 그와 함께 순교했는데, 그의 유해는 오스티아로 옮겨졌고 축일은 7월 16일에 기념한다고 적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6일 목록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당시 성 도나토와 함께 체포되었던 성 힐라리노 수도승이 우상에게 제사를 바치지 않아 매를 맞고 토스카나의 아레초에서 순교했고, 그의 시신이 오스티아로 옮겨졌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성 도나토가 순교했다는 이야기는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교록인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은 성 도나토를 8월 7일에 언급하면서 ‘주교’이자 ‘증거자’로 분명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성 힐라리노가 오스티아 출신의 순교자이며 성 도나토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고 본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7일 목록에서 아레초에 그 교구의 두 번째 주교인 성 도나토가 있었는데, 그의 덕행과 기도의 효과에 대해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가 칭송했다고 기록하였다. 순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그와 함께 순교했다고 알려진 성 힐라리노에 대해서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성 힐라리노는 성 힐라리아누스(Hilarianus, 또는 힐라리아노)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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