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푸르세우스(Furseus, 또는 푸르세오)는 6세기 말 아일랜드 북서쪽 골웨이(Galway) 인근 코리브 호수(Lough Corrib)에 있는 이니스퀸(Inisquin)이라는 작은 섬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는 영국의 역사가이자 교회사학자인 성 베다(Beda, 5월 25일)가 731년에 저술한 “영국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에서 초기 전기와 목격자의 증언을 기초로 자세히 전해주었다. 다만 어린 시절보다는 나중에 영국에서의 활동에 큰 비중을 두었다. 성 푸르세오는 어렸을 때부터 주님을 위해 평생 순례자로 살 결심을 했고, 집을 떠나 수도승이 된 후 라스맷(Rathmat)에 첫 수도원을 세웠는데 수많은 제자가 몰려들었다. 그 후 그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고, 627년경 영적인 환시를 체험하였다. 그의 동생인 성 포일란(Foillan, 10월 31일)과 성 울탄(Ultan, 5월 2일)도 라스맷 수도 공동체에 합류했다. 성 푸르세오는 수도원장보다는 선교사로 전국을 돌며 설교하고 악령을 쫓는데 더 헌신하였다. 성 푸르세오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앵글로색슨족(Anglo-Saxons) 선교를 위해 아일랜드에서 파견한 최초의 선교사로 알려졌다. 630년경 성 푸르세오는 동생인 성 포일란(Foillan, 10월 31일)과 성 울탄(Ultan, 5월 2일)과 함께 잉글랜드 동남부에 있던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 왕국으로 갔다. 시게베르트(Sigeberht) 왕은 그들을 환대하며 오늘날 노퍽주(Norfolk州) 해안가의 그레이트야머스(Great Yarmouth) 부근으로 추정되는 크노베르스버그(Cnobheresburg)의 고대 요새를 제공해주었다. 성 푸르세오는 전통적으로 노퍽주(Norfolk州)의 버그 성(Burgh Castle)으로 알려진 그곳에 영국 남부 최초의 아일랜드 수도원을 세웠다. 여기서 그는 몇 년 동안 픽트족(Pics)과 색슨족(Saxons)의 개종을 위해 힘썼다. 하지만 고적한 은수자의 삶을 원했던 그는 수도원을 성 포일란에게 맡기고 성 울탄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이스트앵글리아와 머시아(Mercia) 왕국 간의 전쟁이 심각해지고 시게베르트 왕도 사망하자 바다 건너 갈리아 지방으로 건너갔다. 644년경 몇몇 동료와 함께 프랑크 왕국 서쪽 네우스트리아(Neustria)에 도착한 성 푸르세오는 페론(Peronne)에서 클로비스 2세(Clovis II) 왕의 궁전장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왕국 어디에든 수도원을 세울 땅을 제공하겠다는 왕의 호의를 들었다. 성 푸르세오는 파리(Paris) 동쪽의 라늬쉬르마른(Lagny-sur-Marne)을 택해 그곳에 수도원과 성당을 세웠다. 그는 죽음의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전쟁으로 인해 흩어진 크노베르스버그의 수도승들을 모아 수도원 재건을 위해 애쓰는 성 포일란과 성 울탄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영국까지 가지 못하고 650년경 프랑스 북부 솜주(Somme州)의 메제롤(Mezerolles)에서 병에 걸려 1월 16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그가 원했던 대로 페론으로 옮겨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4년 후에 그의 유해를 뛰어난 금속 세공인이자 누아용(Noyon)의 주교인 성 엘리지오(Eligius, 12월 1일)가 직접 제작한 작은 집 모양의 관에 안치한 후 그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동쪽 경당의 제단으로 옮겨 모셨다. 성 푸르세오의 무덤은 곧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고, 페론은 성 푸르세오 공경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16일 목록에서 페론 수도원에서 성 푸르세오를 기념한다고 짧게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프루세오가 처음에는 아일랜드에서, 그다음에는 영국에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프랑스 라늬에 수도원을 세웠다고 기록하였다. ‘페론의 성 푸르세오’ 또는 ‘라늬의 성 푸르세오’로도 불리는 그는 성 푸르사(Fursa) 또는 성 푸르시(Fursey, Fursy)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