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루덴티우스(또는 프루덴시오)는 에스파냐 아라곤(Aragon) 태생으로 갈린도(Galind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사라센인들의 박해를 피해 프랑크 왕국으로 갔다. 그리고 이름도 갈린도에서 프루덴시오로 바꿨다. 그는 오늘날 독일의 아헨(Aachen) 북쪽에 샤를마뉴가 만든 궁전의 팔라틴(Palatine) 경당(학교)에서 신학과 역사학 등을 수학했다. 그는 836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Pius, 814~840년 재위)의 궁정에서 “생베르탱의 연대기”(Annales de Saint-Bertin) 쓰는 일을 담당했다. 843년경 샹파뉴(Champagne) 지방 트루아(Troyes)의 주교가 된 그는 신학자로서, 역사가로서 높은 학문적 소양으로 인해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한 이중 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사람과 영원한 죽음을 당할 사람을 미리 예정하셨다는 이론)을 배격했고,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로 프랑크 왕국의 궁정에서 활동한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tus Eriugena)가 신플라톤 철학의 유출설과 그리스도교의 창조설을 융합하려는 이론을 반박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는 트루아의 “동정 성녀 마우라(Maura, 9월 21일)의 전기”(Vita Sanctæ Mauræ Virginis)를 썼다. 861년 4월 6일 트루아에서 선종한 성 프루덴시오에 대해 옛 “로마 순교록”은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지역 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여 트루아의 주교이자 여행자를 위한 “시편 개요”를 편찬하고, 성직 후보자를 위한 성경 교훈집을 엮고, 수도원의 규칙을 쇄신한 공로를 들어 4월 6일 목록에 그를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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