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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스타노(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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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둔스타노 (Dunstan)
축일 5월 1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대주교, 수도승
활동지역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909년경-988년
같은이름 던스탄, 던스턴, 둔스타누스
성인 기본정보

   성 둔스타누스(Dunstanus, 또는 둔스타노)는 909년경 영국 잉글랜드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의 발튼스보로(Baltonsborough)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폐허가 된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을 재건하던 아일랜드계 수도자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 중병 또는 사고로 죽을 위험을 처했으나 기적적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예술, 수공예 등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청년이 되어 애설스탠(Athelstan, 924~939년 재위) 왕의 부름을 받고 궁정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인정을 받았는데, 동시에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그는 동료들의 모함으로 궁정을 떠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적대자들에게 심한 물리적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윈체스터(Winchester)로 가서 그곳의 주교이자 삼촌인 성 알페지오(Alphegius, 3월 12일)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성 알페지오 주교는 조카가 수도승이 되기를 바랐지만, 성 둔스타노는 독신 생활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었다. 그러던 중 온몸의 피부가 부어오르는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아마도 궁정에서 떠나올 때 반대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오염된 구덩이에 빠지면서 감염된 결과로 생각되었다. 다행히도 병에서 치유된 후 그는 수도승이 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고, 934년경 베네딕토회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 그리고 939년에 성 알페지오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은수자로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성 둔스타노는 어린 시절 다녔던 오래된 성모 마리아 성당 맞은편에 작은 은둔소를 짓고 은수 생활을 시작하며 학문과 예술 연구에도 힘썼다. 애설스탠 왕이 죽은 후 그의 동생 에드먼드 1세(Edmund I)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는 성 둔스타노를 체다(Cheddar)에 있는 자신의 궁정으로 불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왕의 호의를 시기한 신하들의 음모에 말려 궁정을 떠나야 했다. 국왕은 943년에 그를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수도원 재건과 개혁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원장이 된 성 둔스타노는 즉시 베네딕토회의 정신에 기초해 수도원 개혁 작업에 착수했고, 수도원 재건과 함께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을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일련의 이러한 작업은 다른 많은 수도원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946년 에드먼드 1세 국왕이 뜻밖에 살해되자 성 둔스타노는 왕의 동생인 에드레드(Edred)가 왕좌로 나아가는데 자문관이 되었으며, 그의 도움을 받아 모든 수도원을 대상으로 원대한 개혁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는 또한 세속적인 정치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색슨족의 부도덕성을 들추어냄으로써 색슨 귀족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고, 데인인(Danes)과의 평화 정착에도 이바지하였다. 그런데 955년 국왕 에드레드가 사망한 후 그의 조카이자 에드먼드 1세 왕의 장남인 에드위그(Eadwig)가 국왕직을 계승하면서부터 에드위그 왕은 성 둔스타노의 가장 큰 적이 되었다. 새 국왕은 성 둔스타노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고 그를 왕국에서 추방하였다. 그래서 잉글랜드를 떠난 성 둔스타노는 플랑드르(Flandre) 지방의 헨트(Gent)로 피신해 아르눌프 1세 백작의 도움으로 그곳의 수도원에서 지냈다. 957년에 국왕의 동생인 에드가(Edgar)에 의해 에드위그 왕이 축출되면서 성 둔스타노는 잉글랜드로 되돌아왔고, 곧이어 우스터(Worcester)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에 그는 런던(London)의 주교가 되었고, 960년에 로마로 가서 교황 요한 12세(Joannes XII)에게 팔리움을 받고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새 국왕인 에드가의 자문관으로서 국가와 교회의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성 에텔볼도(Ethelwoldus, 8월 1일)와 성 오스왈도(Oswaldus, 2월 28일)와 함께 교회 규율을 쇄신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덴마크 사람들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많은 수도원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 성 둔스타누스는 국왕 에드가의 자문관으로 16년 동안 있으면서 그의 잘못을 발견하는 즉시 꾸짖고 진언을 올렸다. 그 후 그는 정계에서 은퇴하여 캔터베리로 돌아왔고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에 임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해 캔터베리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영국 수도원의 재건자였던 성 둔스타노는 선종 이후 오래지 않아 영국인들에게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고, 1029년에 공식적으로 시성되었다. 그는 또한 유명한 음악가로서 하프를 연주하거나 찬미가를 작곡하기도 했고 숙련된 금속 공예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갑옷 제조자, 금세공인, 은세공인, 자물쇠 제조자 및 보석 공예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주교 복장을 하고 금속 공예를 위한 도구들과 함께 표현된다. 또한 성직자가 되기 전 대장간에서 일하던 때에 발에 편자를 박아달라는 악마를 알아보고 그를 물리친 전설적 이야기로 그려지기도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19일 목록에서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의 초대 원장으로 수도 생활을 쇄신하고 우스터, 런던 그리고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된 성 둔스타노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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