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디다쿠스(또는 디다코)는 1400년경 에스파냐 세비야(Sevilla) 근교의 산 니콜라스 델 프에르토(San Nicolas del Puerto)라는 작은 마을에서 신심 깊은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은수자로서 고적한 삶을 살다가 작은 형제회에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몇 년 후 그는 카나리아제도(Canary Islands)에 속한 란사로테섬(Lanzarote Is.)의 아레시페(Arrecife)에 있는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문지기 수사의 소임을 받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뛰어난 사랑으로 큰일을 이룩하여 성덕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1445년 그는 푸에르테벤투라섬(Fuerteventura Is.)의 작은 형제회 공동체의 수호자로 선출되었다. 많이 배우지 못한 평수사에게 그런 직책을 맡기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성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1450년 그는 교황 니콜라오 5세(Nicolaus V)가 선포한 희년에 참여하고 같은 수도회 출신인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노(Bernardinus, 5월 20일)의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갔다. 수많은 순례자가 각지에서 로마로 몰려오면서 예기치 않은 전염병이 발발했다. 아라 코엘리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Basilica Sanctae Mariae de Ara Coeli)에 딸린 수도원에서 머물던 성 디다코는 3개월 동안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돌보았고, 그의 돌봄과 기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 후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는 여러 수도원을 거쳐 1456년 마드리드(Madrid)에 속한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의 산타 마리아 데 헤수스(Santa Maria de Jesus)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고적함 속에 참회와 관상 생활을 실천하며 여생을 보냈다. 늘 겸손하게 수도원 안에서 정원사와 짐꾼의 소임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실천했던 그는 1463년 11월 12일 병환으로 선종하였다. 그는 1588년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평수사로서는 처음으로 성인품에 올라 작은 형제회 평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있는 샌디에이고(San Diego)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12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기록하며 11월 13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례력 안에서 11월 12일에는 이미 교황 성 마르티노 1세(Martinus I)를 기념하고 있었기에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과 함께 교황 성 마르티노 1세의 기념일이 4월 13일로 변경되면서 성 디다코의 전례적 기념일도 선종한 날인 11월 12일로 옮겨졌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11월 12일 목록에서만 그를 언급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문지기였던 이유로 열쇠를 들고 있거나 수도복 위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번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도원의 빵을 가져다주던 그를 누군가 질책하려 했을 때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기적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그는 에스파냐에서는 성 디에고(Diego)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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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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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디다코(11.1 ...] | 금주의 성인: 성 디다코 | 주호식 | 2024/11/10 | 78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