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인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 주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는 이탈리아 태생의 주교로 3세기 중엽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 무너진 갈리아 지방의 재복음화를 위해 성 파비아노(Fabianus, 1월 20일) 교황에 의해 파견된 7명의 선교사 주교인 ‘갈리아의 사도들’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로마에서 파견된 7명의 갈리아의 사도는 파리에 정착해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된 성 디오니시오 외에 나르본의 성 바오로(Paulus, 3월 22일), 투르(Tours)의 성 가티아노(Gatianus, 12월 18일), 툴루즈(Toulouse)의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 11월 29일), 아를(Arles)의 성 트로피모(Trophimus, 12월 29일), 클레르몽(Clermont)의 성 아우스트레모니오(Austremonius, 11월 1일), 리모주(Limoges)의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6월 30일)가 있다. 그중에서 툴루즈의 성 사투르니노와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 디오니시오는 파리의 초대 주교로서 자신과 동행한 성 루스티코(Rusticus) 신부와 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부제와 함께 몇 년 동안 활발히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모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파리 근교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디오니시오와 동료들의 수난과 순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전설적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 전설에 따르면, 파리 지역에서 선교 활동에 큰 성공을 거둔 성 디오니시오와 동료들이 체포된 후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하고 참수당해 그 시신이 센강(Seine R.)에 던져졌다는 것이다. 다른 전승으로는 성 디오니시오가 참수당한 후 직접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는 것도 있다. 520년경에 출간된 “성녀 제노베파의 생애”(Vie de Sainte Genevieve)에 따르면, 이미 그 당시에 성 디오니시오를 전례 안에서 공경하고 있었고, 성 디오니시오가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으로 걸어갔던 곳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덤 자리로 알려주신 곳으로 오늘날 그를 기념해 대성당이 건립된 생드니(Saint-Denis) 지역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전설은 성 디오니시오와 동료들의 순교 장소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파리 북부에 메르쿠리우스(Mercurius, Mercury) 신을 경배하던 언덕에서 참수되었는데, 그곳은 해발 129m로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 이후 ‘순교자의 산(언덕)’(Mons Martyrum)이란 의미를 지닌 ‘몽마르트르(Montmartre)’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순교 후 센강에 던져진 그들의 시신은 곧 신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안장되었고, 12세기에 성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그들의 무덤 위에 성당을 건립하면서 생드니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몽마르트르 정상에는 1875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완공된 예수 성심 대성당(Sacre-Cœur Basilica)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 거리는 근대 미술가와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예술의 거리로 조성되었다. 세 번째 전설은 파리의 주교였던 성 디오니시오의 신원에 대한 혼동과 관련된 것이다. 중세 때 일부 전승은 3세기 중엽에 순교한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1세기에 아테네에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에 의해 개종하고 후에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된 아레오파고스(Areopagos)의 성 디오니시오(사도 17,34; 10월 3일) 그리고 성 바오로가 아테네로 여행할 때 개종한 익명의 신비주의적 저술가 등 세 사람을 서로 혼동하고 있었다. 17세기까지 이런 혼동이 있었으나 이들 간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 때에 이들 갈리아의 일곱 사도를 사도 시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도적 전통과 연결하여 지역 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런 영향에서 시작된 오해로 보인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9일 목록에서 아레오파고스의 성 디오니시오가 사도 성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고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로마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세(Clemens I, 11월 23일)의 축복을 받고 갈리아 지방 복음화를 위해 파견되었으며, 몇 년 동안 파리에서 맡겨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후 성 루스티코 신부와 성 엘레우테리오 부제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고 10월 9일에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들의 순교를, 그리고 10월 3일에 아레오파고스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를 기념하도록 수정하여 기록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활동 시기 또한 3세기와 1세기로 명확히 했다. 교회미술에서 성 디오니시오는 전설적 순교 이야기에 근거해 주교 복장을 하고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프랑스와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성 디오니시오는 데니스(Denis) 또는 드니(Denis)로 불리며,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진 ‘14명의 구난 성인’(救難 聖人, Holy Helpers) 가운데 한 명으로 공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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