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 Magnus)는 400년경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성장한 듯하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가 교황 성 첼레스티노 1세(Coelestinus I, 7월 27일)의 부제가 되어 중요한 일들을 수행한 것은 분명하다. 430년에 그는 교황에게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대해 알리고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 7월 23일)에게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반대하는 주님의 강생에 대하여”(De incarnatione Domini contra Nestorium)라는 글을 쓰도록 했다. 431년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 치릴로(Cyrillus, 6월 27일)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 예루살렘의 유베날리스(Juvenalis) 주교가 팔레스티나 전역에 대해 수위권을 행사하려는 계획을 막아달라며 교황을 지지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다. 432년 교황좌에 오른 성 식스토 3세(Sixtus III, 8월 19일) 재위 중에도 그는 부제로 봉사하며 교황이 펠라기우스주의 이단을 배척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440년에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425~455년 재위)의 요청을 받아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Flavius Aetius) 장군과 알비누스(Albinus) 집정관 사이에 충돌을 중재하는 어려운 임무를 띠고 갈리아로 파견되었다. 이 충돌은 잘못하면 로마제국 내의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었으나 성 레오 부제에 의해 원만히 해결되었다. 성 레오 부제가 아직 갈리아 지방에 머무르고 있던 440년 8월 19일 교황 성 식스토 3세가 선종하자 로마의 성직자들과 백성들은 결석 중인 그를 후임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로마로 돌아온 그는 그해 9월 29일 주교품을 받고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즉시 로마의 주교로서 사목 활동에 주력했다. 그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정규적으로 강론하고, 전례 거행을 교회 공동체에 생동감 있게 도입함으로써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생활화하도록 했다. 당시 성인(成人) 입교자들이 많았는데, 그는 예비 신자들을 위한 교리 교육뿐 아니라 기존 신자들의 신앙과 윤리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또한 교회의 정통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신자들에게 이단의 위험성을 명확히 밝혀 주었고, 신자들이 세례받은 후에도 이교 시절에 행하던 미신 행위에 빠져드는 것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여러 가지 전례 개혁을 시도하였다. 또한 여러 대성당을 수리하고 새 성당들을 신축하기도 했다. 성 대 레오 1세 교황이 재임하던 때는 교회와 제국 모두 위기를 겪는 시대였다. 당시 서로마 제국은 야만족들의 계속된 침략으로 붕괴 상태에 놓여있었고, 교회 또한 이런 정치적, 사회적 불안 속에서 여러 가지 이단 사상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us),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us),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us), 프리실리아누스주의(Priscillianismus)와 같은 이단 사상에 강력히 대처하면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였다. 또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대수도원장인 에우티케스(Eutyches) 일파와도 격돌하게 되었다.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인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하나의 위격(位格)으로 존재함을 부인하는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을 주장했고,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년 재위)의 지원을 받아 더욱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성 플라비아노(Flavianus, 2월 17일)는 448년에 교회 회의를 소집해 에우테케스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그의 사제직을 박탈했다. 에우티케스는 이 결정에 불복해 교황에게 상소했으나 교황 성 대 레오 1세는 정통교리를 고수하고자 노력한 성 플라비아노 총대주교의 용기를 격찬하는 장문의 친서(Tomus ad Flavianum)를 보냈다. 이 교리 서한은 “레오의 친서”(Tome of Leo)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유명한 문서로 그리스도론에 대한 단성설 이단 논쟁이 있을 때마다 판단 기준으로 제시되었었다. 그리고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에서 에우티케스의 단성론은 단죄되고, ‘강도들의 시노드’(Latrocinium, ‘Robber Synod’)로 불리는 449년의 제2차 에페수스(Ephesus) 공의회를 주재한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코루스(Dioscorus) 총대주교는 파문되었다. 그런데 공의회의 결정 사항 중 제28조가 문제였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로마의 주교와 동등한 품위를 가진다.’라는 조항은 성 대 레오 교황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다. 반대 이유는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결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제28조의 결정은 교황 성 대 레오 1세가 예견했듯이 동방과 서방 교회의 대립과 분열의 한 이유가 되었다. 성 대 레오 1세 교황은 외교 문제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451년 훈족의 아틸라(Attila)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쳐들어와서 로마를 위협하자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는 교황에게 강화 중재를 요청했고, 성 레오 교황은 용감히 나아가 화평을 얻어내고 아틸라 왕을 돌려보내 로마의 멸망을 막아냈다. 455년 반달족의 함대가 테베레강(Tevere R.)을 거슬러 올라왔을 때도 성 레오 교황은 성벽 밖에서 가이세리크(Gaiseric, 428~477년 재위) 왕을 만나 로마를 방화하고 시민들을 살육하는 것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2주 동안 로마와 교회가 약탈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교황 성 대 레오 1세는 서방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교황의 권한을 분명히 했다.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권한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주신 권위(마태 16,18)로부터 유래하는 명령이기에 다른 모든 지역 교회와 속권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굳게 확립하였다. 한마디로 그의 재임 기간은 교황권 확립의 시기였다. 교황 성 대 레오 1세는 서간과 강론에 있어서 풍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의 강론들과 공식 문헌적 성격을 띠고 있는 서간들은 신학적인 의미에서뿐 아니라 라틴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그 시대의 교황 중에서 대부분의 강론이 전해져 오는 유일한 교황이며, 그의 서간집은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 이전까지 가장 광대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와 함께 ‘위대한(大)’이라는 존칭을 받는 교황인 성 대 레오 1세는 461년 11월 10일 선종하여 사도 성 베드로의 무덤과 가장 가까이 묻히기를 소원했던 대로 성 베드로 대성당 현관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688년 6월 28일 교황 성 세르지오 1세(Sergius I, 9월 8일)에 의해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남쪽 회랑에 마련한 제단에 안장되었다. 그는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황 성 대 레오 1세의 축일은 1969년까지는 4월 11일에 기념했다.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선종한 날인 11월 10일에 기념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는 동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도 성인으로 공경받는데, 그곳에서는 2월 18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1일 목록에서 로마의 교황이자 증거자인 성 레오가 탁월한 공로로 ‘위대한(大)’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그는 칼케돈 공의회에서 교황의 권위를 신장하고 특사를 보내 에우티케스를 단죄했으며, 수많은 교령과 논문을 통해 하느님 교회의 그리스도의 양 떼로부터 칭송을 받은 후 선하고 열정적인 목자로서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10일로 축일을 옮겨 교황이자 교회 학자인 성 레오 1세가 토스카나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부제로서 부지런히 활동하다가 베드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고상하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양육하고, 칼케돈 공의회에 그의 특사를 보내 하느님의 강생에 대한 올바른 교리를 열렬히 옹호한 공로로 ‘위대한 교황’이란 칭호를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다가 주님 안에서 안식에 들어가 오늘 성 베드로 곁에 안치되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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