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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에 관해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다. 11세기에 작성된 그의 전기가 있지만, 전설적 내용이 대부분이라 역사적 가치를 두기는 힘들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5세기 말 갈리아 지방 오를레앙(Orleans)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크 귀족이었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후 개종한 클로비스 1세(Clovis I, 486~511년 재위) 왕의 친구였다. 그는 어린 시절 기사 훈련을 받기 위해 궁정에 들어갔고, 젊은 시절 기사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나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클로비스 1세에게 세례를 준 랭스(Reims)의 성 레미지오(Remigius, 1월 13일) 주교를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세례를 받으면서 모든 특권을 포기하였다. 그가 세례를 받은 때 클로비스 1세가 대부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성 레미지오의 제자가 되어 학문과 덕행을 닦았다. 그리고 왕국 내의 비신자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돌보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자 클로비스 1세는 그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주교가 되기를 바랐으나 그는 겸손하게 모두 사양하였다. 그는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국왕에게 언제든 감옥에 갇힌 이들을 방문하고 그중에서 합당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야만적인 전쟁의 희생자인 많은 포로를 석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갇힌 이들과 전쟁 포로들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게 되었다. 주교직을 사양한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는 오를레앙 근처 미시(Micy)에 있는 수도원(나중에 생메스맹[Saint-Mesmin] 수도원으로 불림)에 들어가 성 막시미노(Maximinus, 12월 15일) 원장으로부터 수도복을 받고 모범적인 수도 생활을 했다. 520년경 성 막시미노 수도원장이 선종한 후 그에게 원장직을 맡기려 하자 그는 더욱 고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성 레오나르도는 리무쟁(Limousin) 지방으로 가서 리모주(Limoges) 근처 포뱅(Pauvain) 숲의 한적한 곳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직접 조그마한 움막을 짓고 채소와 과일로 연명하면서 하느님만을 관상하며 생활했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왔다. 그는 식물과 가축 및 질병 등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 농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의 삶에 이끌려서 모인 이들로 인해 그의 움막 근처에 작은 수도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비스 1세 왕이 임신한 왕비와 함께 그 지역으로 사냥을 나왔다가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클로비스 1세 왕은 511년에 사망했기에 이는 전설의 오류로 보인다. 오히려 그의 후손 왕 가운데 한 명으로 보고 있다. 왕비가 갑자기 진통을 겪었을 때 성 레오나르도의 도움과 기도로 순조롭게 출산하여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왕은 그에게 큰 상급을 주고 싶었으나 성 레오나르도는 자신과 수도 공동체가 살 수 있는 작은 숲만을 원했다. 하지만 왕은 하룻밤에 당나귀를 타고 숲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넓은 땅을 선물로 주었다. 성 레오나르도는 그 땅을 ‘고귀한 왕’(a nobilissimo rege)으로부터 받은 곳이라 해서 ‘노빌리아쿰’(Nobiliacum)이라 불렀다. 그는 그곳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성당을 짓고 스승인 성 레미지오를 위한 경당도 세웠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은둔 생활을 실천하려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이 수도원 주변에 정착하면서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딴 생 레오나르 드 노블라(Saint-Leonard-de-Noblat)라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훗날 유명한 노블라 수도원의 모태가 되었다. 그는 수도원 공동체를 지도하면서 인근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해 많은 비신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 레오나르도는 6세기 중엽 어느 해의 11월 6일 선종하여 노블라에 지은 성당에 묻혔다고 한다. 그의 묻힌 노블라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에스파냐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이어지는 순례길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의 무덤에서 그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성 레오나르도는 중세 후기에 가장 존경받는 성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성 레오나르도는 그의 생애와 관련하여 수감자와 전쟁포로, 병자와 출산을 앞둔 임신부, 농부와 자물쇠 제조업자 그리고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을 풀어주었던 일화 때문에 교회미술에서 그는 족쇄 또는 차꼬를 들고 있는 수도원장으로 주로 묘사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6일 목록에서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리모주에서 증거자이자 성 레미지오 주교의 제자였던 성 레오나르도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 은둔 생활을 택했고, 성덕과 기적으로 유명했으나 그의 기적의 은사는 주로 포로들을 구출하는 데서 그 빛을 발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프랑스 리모주 근처의 마을에 은수자 성 레오나르도가 있었다고 짧게 기록하였다. 전승에 따라서 그를 부제 또는 사제로 부르기도 하는데, 개정 “로마 순교록”은 그에 대한 언급 없이 ‘은수자’로 그를 소개했다. 노블라/노블락(Noblat/Noblac)의 성 레오나르도는 리모주의 성 레오나르도로도 불린다. 그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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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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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레오나르도(11 ...] | 금주의 성인: 성 레오나르도 | 주호식 | 2024/11/07 | 269 | 0 |
| 1 | [레오나르도(11 ...] | 성인 이름에 담긴 뜻: 레오나르도(Leonardus) | 주호식 | 2018/02/06 | 1718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