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이데시우스(Aedesius, 또는 에데시오)는 소아시아 남서쪽 끝에 있는 리키아(Lycia)에서 태어났다. “로마 순교록”은 그의 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순교자 성 아피아노(Apphianus, 4월 2일)의 형제인 성 에데시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하느님께 성별된 동정녀들을 포주에게 넘긴 사악한 판단에 공개적으로 저항했다. 그로 인해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잔인한 고문을 당한 후 바다에 던져져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의 기록은 성 아피아노와 함께 카이사레아(Caesarea)의 성 팜필로(Pamphilus, 2월 16일)의 제자였던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성 에데시오의 순교에 대해 남긴 상세한 증언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 증언에 따르면, 성 에데시오는 부유하고 저명한 부모에게 태어나 우수한 교육을 받은 철학자였고, 형제인 성 아피아노처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개종한 후에도 그는 교육받은 이들 안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집정관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데 어떠한 주저함도 없었다. 그로 인해 여러 차례 감옥에 갇히고 팔레스티나의 광산에서 노동형으로 복역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석방된 후에 그는 이집트로 가서 고적한 삶을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히에로클레스(Hierocles) 총독 치하에서 이집트에서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졌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기로 서약한 동정녀들을 노예로 삼고 강제로 매춘업소로 보낸 당국의 정책에 분노를 느낀 성 에데시오는 총독 앞에 자진 출두해 그들의 부도덕함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 결과 그는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가장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바다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형벌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에서는 4월 8일에 그리고 동방정교회에서는 4월 2일에 기념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9일 목록에서 그의 행적과 순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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