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에우프시키우스(또는 에우프시키오)는 귀족 출신의 젊은이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 치하에서 순교하기 전에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율리아누스 황제는 카파도키아의 수도인 카이사레아를 매우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즉위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이 그 도시의 유피테르(Jupiter)와 아폴로(Apollo) 신전을 파괴했고, 다시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 신전마저 무너뜨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칠 듯이 분노하였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안티오키아(오늘날 튀르키예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로 가는 길에 카파도키아에 들렀는데, 이미 교회의 지도자들이 포르투나 신전을 파괴한 죄목으로 고소된 상태였다. 황제는 신전 파괴에 가담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추방하거나 사형으로 강력히 처벌하였다. 성 에우프시키오는 신전을 파괴한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황제의 모든 회유와 우상 앞에 희생 제사 바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당당히 신앙을 고백해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당시 황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체적 박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관련 서적과 성물 등 모든 교회 재산을 압수했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강도 높은 노역에 시달렸고 신자들은 높은 세금을 내야만 했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파괴된 이교 신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계속했지만, 363년 6월 제국의 수도인 크테시폰(Ctesiphon)에서 후퇴하다가 적군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다. 카이사레아 시민들은 이교 신전을 재건하는 대신 그 자리에 성 에우프시키오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당을 지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370년 4월 8일에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1월 2일)가 폰투스(Pontus) 지방의 모든 주교를 성 에우프시키오 축일 기념행사에 초대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9일 목록에서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에서 포르투나의 신전을 파괴한 죄로 성 에우프시키오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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