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네스(Joannes, 또는 요한)는 5세기 초반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나폴리의 주교로서 정치적 · 종교적 격변기에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 나폴리 사람들을 강력한 지도력으로 인도하며 교회의 성장을 위해 힘썼다. 그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나폴리 근처 포추올리(Pozzuoli)에서 순교한 성 야누아리오(Januarius, 9월 19일)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의 유해를 나폴리로 옮겨 모신 일이었다. 성 야누아리오는 나폴리 출신으로 베네벤토(Benevento)의 주교로 활동하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 포추올리에서 순교했다. 성 요한 주교는 나폴리 사람들이 사랑하는 성 야누아리오의 유해를 모셔와 바위를 깎아 새로 만든 카포디몬테(Capodimonte) 카타콤바에 모셨다. 성 야누아리오의 유해는 나폴리 사람들의 유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신앙과 도시를 보호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는 또한 폭넓은 지식과 굳건한 신앙으로 가톨릭교회의 정통 교리를 옹호하며 신자들을 올바른 믿음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선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놀라(Nola)의 성 바울리노(Paulinus, 6월 22일) 주교가 꿈에 나타나 그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432년 4월 2일 성토요일에 파스카 성야 미사를 봉헌하던 성 요한 주교는 평화로이 선종해 주님 품에 안겼고, 다음날 성 야누아리오가 묻힌 곳에 안치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22일 목록에서 나폴리의 주교인 성 요한이 놀라의 성 바울리노 주교의 부름을 받아 천국으로 인도되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이날은 본래 9세기에 나폴리에서 평화의 조정자로 활동한 다른 성 요한 주교를 기념하던 날인데, 5세기에 나폴리에서 활동한 성 요한 주교와 혼동해서 빚어진 오류로 1955년 이후 정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고대의 전통대로 4월 3일로 축일을 옮겨 파스카 성야에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던 중 선종한 성 요한 주교가 수많은 신자와 개종자가 동행하는 가운데 주님 부활 대축일에 무덤에 묻혔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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